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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누구나 발 딛고 선 곳이 곧 우주이다..
사회

누구나 발 딛고 선 곳이 곧 우주이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1/09 00:00 수정 2007.01.09 00:00

토박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그 땅에서 나서 오래도록 살아내려 오는 사람’이라 돼 있다. 그러므로 양산 토박이를 규정하자면 최소한 5~6대 전 조상이 양산에 터를 잡은 후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양산의 토박이는 얼마나 될까. 어림잡아 23만 양산시민 가운데 약 20%, 5만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연초에 웬 뜬금없는 토박이냐고 하겠다.

필자가 토박이를 거론하게 된 건 지난해 연말 몇몇이 모인 송년회가 계기였다. 송년회 중 ‘잘 사는 양산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바꿔야 할 것’ 을 주제로 담소가 이어졌는데 한 지인이 들려준 토박이 관련 일화는 큰 충격이었다. 수년전 어떤 이가 양산으로 이사를 왔는데 토박이에게 인사(바꾸어 말하면 일정의 신고식)을 안한다고 두드려 맞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지난 해 5.31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인 오근섭 시장이 우세가 예상되던 한나라당 후보를 물리치고 재선할 수 있었던 건 한나라당 후보는 외지인, 오 시장은 토박이였기 때문이란 얘기로 이어졌다. 한나라당 양산시장 후보 공천에 참가한 5명 중 토박이인 4명이 공천에서 물을 먹었고 외지 출신이 공천권을 따 내자 공천 참가자로 대표되는 토박이들이 정서상 반발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러자 어떤 이는 현 양산시 의회 13명의 의원 중 토박이가 아닌 이는 한 사람도 없다며 양산에서는 토박이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푸념이 뒤따랐다. 해를 넘기며 반복되는 시장과 국회의원의 대립 또한 실상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내려 한다는 인식에서 오는 반발, 즉 토박이 텃세가 본질이라는데 까지 나아갔다.

물론 이날 토론의 논거가 구체적인 통계나 과학적인 분석을 근거로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는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기에 영 터무니없다고 치부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토박이 문화가 갖는 패거리 문화의 부정성과는 별도로 긍정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굳이 비교해보자면 굴러온 돌 보다 박힌 돌이 그 지역에 대한 애정이 더 도탑다는 것이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주인 정신을 일컫는 것인데 아무래도 외부에서 일터, 사업 등을 따라 삶터를 옮겨온 이들보다 양산을 자신의 뿌리로 여기는 토박이가 지역 사랑이 더 깊다는 것이다.

그런 한편 토박이가 가진 부정성 중에 하나가 패거리 문화다. 다시 말해 혈연, 학연과 함께 지역을 매개로 하는 끼리끼리 정서가 지엽적으로 나타나 공동체 지향에 역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헌데 이런 토박이 문화의 폐쇄성이 갖는 근원은 유난히 외세침략을 많이 받았던 우리의 역사 속에서 생겨난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란 주장도 나왔다. 또 한 사회학자는 사람과 사람 간에 오가던 정이 넘치던 공동체 사회에서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화로 접어들면서 내 몫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심리적 박탈을 토박이들의 정서라고 했다.

필자는 양산에 대해 묻는 이들에게 늘 ‘기회의 땅’이라 소개한다. 신도시 개발, 부산대 제2캠퍼스와 한의학전문대학원, 늘어나는 산업단지, 부산과 울산을 인근에 둔 지리상 특성 등으로 양산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며 발전 잠재성 또한 무한한 도시이다.

그렇기에 역동적으로 미래로 나아가야 할 과도기에 선 지금, 고인 돌과 박힌 돌 또는 주류와 비주류 따위로 나뉘어 기득권을 주장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해서는 안 된다. 황금돼지 새해, 굴러온 돌이 지역에 제대로 박힐 수 있도록 배려하는 박힌 돌의 성숙함, 현재 내 삶터의 주인 정신에 대한 굴러온 돌의 자성으로 부터 출발하자.

사람마다 발 딛고 선 그곳이 곧 우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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