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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사회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1/09 00:00 수정 2007.01.09 00:00

누구에게나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한 지점이 있다. 그것은 시간이면서 동시에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믿고 있다. 기다리지 않으면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진실하고 절실한 기다림은 사람에게 참된 각성을 가져다준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곽재구, <사평역에서>

 

나는 <사평역에서>를 깨달음의 지점을 나타내는 시로 읽는다. 그 깨달음은 첫 행에 분명히 드러난다. 시는 말한다.‘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고. 기다리는 것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고. 기다림이 간절할수록 더욱 더디게 온다고 말이다.

그 기다림이 마지막 기회라면 기다리는 자의 초조함과 절실함은 얼마나 간곡할 것인가? 시에서 기다림의 간절함은 ‘좀처럼’이라는 시어로 극대화된다.

그 다음부터 시는 기다리는 자의 간절함을 구체화하는 요소들을 보여준다. 지친 사람, 아픈 사람, 각자 고달프게 살아온 삶에 대해 할 말이 많아도 다 못하는 사람들, 이들 모두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창 밖에 내리는 눈 혹은 비정하고 냉혹한 현실 같은 배경.

나에게 이 시의 가장 애절한 부분을 들라 한다면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침묵해야 한다는 것을/모두들 알고 있었다’를 꼽을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금의환향(錦衣還鄕) 하고 싶은가?

귀향할 때면 객지에 나가 성공한 무용담을 들려주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는가? 그러나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가 전부인 그들 마음에 있을 가난과 굴욕. 그들이 고향에 돌아가 펼칠 무용담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홀로 <사평역에서>를 읽을 때면 스스로의 상념으로 이 구절에서 눈물이 핑 돌곤 했다.

그러나 나는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평안과 안식을 느낀다. 자정이 넘은 시각에 그들이 막차를 무사히 타고 잠에 빠져 들어 낮 동안의 모든 낯설음과 뼈아픔도 잊고 곯아떨어진 모습, 비록 그들의 삶이 단풍잎 같이 소박하고 초라하더라도, 어디로 흘러가게 될 지 모른다 하더라도. 그들을 보고 있는 시적 화자가 지극히 연민에 빠져있다 하더라도.

나는 올 한해 나와 이들이 목적지에 무사히 안착하기를 기원한다.

 

배정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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