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곽재구, <사평역에서> 나는 <사평역에서>를 깨달음의 지점을 나타내는 시로 읽는다. 그 깨달음은 첫 행에 분명히 드러난다. 시는 말한다.‘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고. 기다리는 것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고. 기다림이 간절할수록 더욱 더디게 온다고 말이다. 그 기다림이 마지막 기회라면 기다리는 자의 초조함과 절실함은 얼마나 간곡할 것인가? 시에서 기다림의 간절함은 ‘좀처럼’이라는 시어로 극대화된다. 그 다음부터 시는 기다리는 자의 간절함을 구체화하는 요소들을 보여준다. 지친 사람, 아픈 사람, 각자 고달프게 살아온 삶에 대해 할 말이 많아도 다 못하는 사람들, 이들 모두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창 밖에 내리는 눈 혹은 비정하고 냉혹한 현실 같은 배경. 나에게 이 시의 가장 애절한 부분을 들라 한다면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침묵해야 한다는 것을/모두들 알고 있었다’를 꼽을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금의환향(錦衣還鄕) 하고 싶은가? 귀향할 때면 객지에 나가 성공한 무용담을 들려주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는가? 그러나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가 전부인 그들 마음에 있을 가난과 굴욕. 그들이 고향에 돌아가 펼칠 무용담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홀로 <사평역에서>를 읽을 때면 스스로의 상념으로 이 구절에서 눈물이 핑 돌곤 했다. 그러나 나는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평안과 안식을 느낀다. 자정이 넘은 시각에 그들이 막차를 무사히 타고 잠에 빠져 들어 낮 동안의 모든 낯설음과 뼈아픔도 잊고 곯아떨어진 모습, 비록 그들의 삶이 단풍잎 같이 소박하고 초라하더라도, 어디로 흘러가게 될 지 모른다 하더라도. 그들을 보고 있는 시적 화자가 지극히 연민에 빠져있다 하더라도. 나는 올 한해 나와 이들이 목적지에 무사히 안착하기를 기원한다. 배정희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