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은 수천 년,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욕망이나 즐거움에 변화가 없는 삶을 살아오고 있다. 거북이는 여전히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다음 세대 또한 같은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별로 옮겨 살 계획까지 실현하고 있으며 생명연장의 꿈마저 당차게 품고 있다. 인간만이 자신의 탁월한 생각과 체험을 이웃과 다음 세대에 전하여 욕망의 가짓수를 늘릴 수 있다. 이러한 인간생태의 좋고 나쁨을 따지기 이전에, 이것을 이루어낸 핵심은 기록과 그 축적에서 비롯한다는 점에 주목하자. 그것들은 오늘까지 차곡차곡 책갈피에 쌓여 있다. 이것이 인간은 도저히 책을 떠날 수 없는 이유이며, 오늘날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독서량으로 계량하는 이유이며 또한 인간인 이유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여름날 뭉게구름이 비구름으로 변해 빗방울이라도 떨어지면 그대로 젖어 소를 몰고 돌아오던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옛이야기라도 들을 수 있는 가정이었다면 무지무지 행복했을 시절, 아궁이의 잉걸불, 7촉짜리 전구보다는 밝았던 은하수, 모깃불 쐬며 듣던 아버지네들의 징용과 전쟁이야기만 무성하던 시절, 그러나 집안에 책이라고는 학교에서 받아 온 교과서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 오래 되지도 않은, ‘책이 밥 먹여 주냐’는 식의 자조적(自嘲的)이긴 하지만 물질적 빈곤이 만들어낸 의식을 가졌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참 많이도 변했다. ‘책을 안 사주나, 일을 시키나. 그저 열심히 읽고 공부만 하라는데 그걸 못하냐’며, 멍석을 깔아주었는데도 놀 줄을 모른다며 혀를 차고 안달하고 닦달하는 부모들을 종종 보게 된다. 글 읽기의 ‘무용’과 ‘유용(有用)’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가치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가치의 판단은 일반적으로 그 시대상황을 뿌리에 두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글 읽기의 물리적 환경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아졌고 입시를 비롯한 수단적 가치도 한몫 거들면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교육열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운 대한민국 부모들이 안달하는 것은 당연한데 아이들은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 여기에서 ‘교육열’이라는 맹목(盲目)의 치장을 하고 있는 기성세대나 부모들의 문제, 자식교육이라는 전제하에서는 그들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문제를 지적할 수 있는 것이다. 웬만한 사람이면 한번쯤 자신의 빈곤에 대해 절망한 적이 있을 것이다. 가난을 이유로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도 없었고 지하 사글세방에 살아야 했으며, 한 끼의 점심을 맹물로 다스릴 수밖에 없었던 경제적 아픔에 말이다. 또 먹고 살만해지고 나서 느끼게 되는 정신적이거나 지적 빈곤에 작아지는 자신을 경험했을 것이다. 지행일치(知行一致)의 문제는 논외로 치고, 어떠한 일에 대해 알고 있고 생각해 보았다는 것과 모르고 있다는 것의 차이는 인간과 동물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우선, 그런 인식의 변화를 전제로 해야만 한다. 책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재미가 있는지 부모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점 또한 문제이다. 먼저 부모가 들여다보고 맛을 보아야 한다. 극단적인 말이지만 어린 시절에 동화도 읽을 수 없었던 세대라면 지금이라도 아이에게 사 준 동화를 함께 읽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사실 읽어야할 연령대가 정해진 책은 없으며 동화 속의 진실이 어찌 아이들의 삶을 말하고 있겠는가.〈어린왕자〉가 어찌 아이들만의 이야기겠는가. 분명한 것은 권유나 강요 이전에 자신이 가 보아야 할 길임을 깨닫는 일이다. 그리할 때, ‘유용’을 본래의 의미에서 바라보게 될 것이고 진정한 안내자가 될 수 있다. 나아가 책을 읽고 느끼는 즐거움의 기미가 그들에게 전해져야 한다. 그때가 부모와 자식의 삶이 평행선에 가까워진 순간이며, 비로소 대화가 가능해진 상황이 된 것을 느낄 것이다. 청소년시절은 노는 방법을 익혀가는 시기라 할 수 있다. 놀 줄을 알게 되면 멍석은 자기가 알아서 깔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말에게 물을 먹이고 싶다면 일단 물가에까지는 끌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작년 9월 양산시민시문에 양산지역 독서왕으로 선정된 윤득이씨가 소개된 적이 있다.
그녀는 ‘책 읽을 때 가장 행복했고 그 속에 진리가 담겨있다’, ‘내가 읽으니 아이들에게 읽으라는 소리도 필요 없다’는 소감을 밝히고 있다. 많은 도서관이나 교육기관에서도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 또는 독서가족 등을 선정하여 시상을 하는데 그들의 소감 또한 그리 다르지 않다. 오늘은 사회적 시설이나 정책적인 지원 문제 따위는 접어두고 자신을 돌아보았으면 한다. 학교 도서관에 가보면 7~8년이 넘어도 대출기록 한번 되지 않은 책이 수두룩한 현실이다. 국민의 25%가 일 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것이 혹시 나와 유사한 현실이 아닌가 돌아볼 때이다.박영봉 / 계간지 ‘주변인과 시’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