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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설거지를 하다가
사회

설거지를 하다가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1/16 00:00 수정 2007.01.16 00:00

통도사 성보 박물관은 화요일에, 학교는 일요일에 문을 닫는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쉬는 날이 서로 다르다. 아내가 없는 일요일이면 청소기는 작은놈이 돌리고 빨래 개는 것은 큰놈이 한다. 나는 빨래 널고 밥하고 설거지한다.

그런데 요즘 설거지하기가 이전보다 좀 불편해졌다. 좁은 집이 더 좁아지는 것을 알면서도 마침내 김치 냉장고를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식기 건조대를 치우고 그 자리에 전기밥솥을 놓고 보니 설거지할 그릇을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다. 그래서 씻은 그릇 대충 물기 빠지면 그릇바닥 행주로 닦아 싱크대 아래로 옮겨 넣는다.

살림살이가 늘어날수록,  살림살이가 불어 편해진 것보다 집이 좁아져 불편해지는 것이 더 많은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힘들더라도 아파트 평수 넓은 곳으로 옮겨가야 하지만 몇 평 더 넓은 아파트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다. 이 아파트 팔아봐야 강남 아파트 한 평 값밖에 안 하는데도 말이다.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함민복의 <긍정적인 밥>전문

시 한 편의 고료, 시집 한 권 값, 시집 한 권의 인세를 교환가치인 삼만 원, 삼천 원, 삼백 원에 견주면 너무 박하고, 헐하고, 박리다 싶다가도 절대가치에 가까운 쌀 두 말, 국밥 한 그릇, 굵은 소금 한 됫박에 견주면 따뜻해지고, 가슴 덥혀지고,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이 없다 한다.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자신의 시작행위에 대해 긍정하고, 사람들 마음에 따뜻한 감동을 주는 시를 쓰고, 내 시가 소금처럼 소중한 것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따뜻한 어조로 살아난다.
30대 중반에 강화도에 들어가 한 십년 혼자 살고 있다는 시인의 시이다. 동네 어민들과도 이제 어우러져 고깃배에 오르고, 갯벌에 석양 늘어지면 노을 안주 삼아 소주잔 기울인다는 시인이다.

어떤 날은 박물관 찾는 손님이 열 명이 되지 않는 날이 있다고 한다. 박물관 매표소에서 일하는 아내가 ‘오늘은 갈매기(손님)도 몇 마리 안 왔어. 갈매기라도 자주 오면 심심하지 않은데.’ 하며 돌아올 시간이다. 박물관 앞 외로운 섬, 독도 지킴이를 끝내고 올 시간이다.

설거지 끝내고 보니 식기 건조대 있을 때에는 식기 건조대와 싱크대 위에 수북하니 쌓여 있던 그릇들이 깨끗이 치워져 있다. 몸 조금 더 움직이는 수고한 덕이다. 이런 좋은 점이 있다면 억지로 집 넓히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하다가 함민복 시인을 떠올려 봤다.

그렇게 사는 삶에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부분이 있기에 사람들이 찾는 것 아닐까. 이렇게 좁은 집에서 씻은 그릇 행주로 닦아가며 치우는 삶에도 좋은 점이 없잖아 있을 것이다.
이제 손 닦고 독도 지킴이 태우러 가야 한다.

문학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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