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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바람의 단내를 느낀다 삼감리 느티나무..
사회

바람의 단내를 느낀다 삼감리 느티나무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1/16 00:00 수정 2007.01.16 00:00
하북면 삼감리 삼감마을 느티나무

양산노거수 이야기-  더불어 사는 큰나무

마을마다 사연을 가진 나무들이 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이 땅을 지켜온 큰 나무들. 지난해 지역신문발전기금 저술사업을 통해 양산 곳곳에 우리 삶을 지켜온 큰 나무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책으로 엮어보았습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온 큰 나무들의 새 의미를 2007년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할 양산시민들과 함께 다시금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지면을 통해 나누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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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감 느티나무는 사람들의 휴식처로 언덕 곁에 있던 상수리나무와 당산나무로 역할을 나누어 왔다. 하지만 당산나무가 말라 죽자 마을 사람들은 30여년 전 새롭게 느티나무를 심어 당산나무를 대신했다.

삼감 주민들은 마을 뒤편 산자락에 할배당산을 모시고, 지금 마을회관 곁에 할매당산과 함께 음력 3월 삼짇날 제를 올렸다. 할배당산 역시 말라 죽은 뒤 할매당산과 함께 느티나무로 옮겨 심어 마을의 안녕을 빌어오던 큰 나무 가운데 홀로 남아 300여년 세월 동안 삼감 주민들을 지켜보는 셈이다.

90여 가구 주민들이 오붓이 살고 있는 하북면 삼감리 삼감마을.
마을 회관 앞에는 좌우로 들판을 거느리고 우뚝 솟아있는 300년이 넘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양산천까지 이어진 들판을 한 눈에 굽어보는 느티나무는 1982년 시 보호수로 지정되기까지 300년 세월을 한결같이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로 사랑받아 왔다.

하지만 1970년대 새마을사업 시범마을로 선정된 후 새로 시멘트 길을 다지면서 흙냄새 폴폴 풍기던 마을 안길은 모두 회색빛으로 변해버렸다. 삼감마을 주민들의 정자목으로 사랑받아온 느티나무 역시 밑동 아래 일부를 제외하고는 회색빛 시멘트에 갇혀 버렸다.

원래 삼감 느티나무 주변은 주민들이 지성을 드리던 상수리나무와 느티나무, 팽나무들이 숲을 이루면서 삼감 주민들의 편안한 휴식처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오랜 세월 수명을 다한 주변 나무들이 하나 둘 말라죽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느티나무와 팽나무 한 그루만 마을 한가운데에서 지난 추억을 회상하고 있을 뿐이다.

마을 숲은 마을 공동체의 중심
마을 이름 ‘삼감(三甘)’이란 철마다 마르지 않고 단물이 솟아오르는 3개의 샘을 가진 마을이란 뜻이다. 물통샘, 복판샘, 아래샘, 이렇게 3개의 샘은 이제 간이상수도 보급으로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주민들이 물통골이라 부르는 마을 뒷산에 있는 물통샘은 이미 대숲에 갇혀 사람들의 왕래가 끊어진 지 오래고, 산자락 바로 아래에 있는 복판샘은 바로 곁 한 가구만 때때로 사용할 뿐이다. 느티나무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아래샘은 이남숙(81) 할머니 집에 있는 우물로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할머니는 언양 가촌에서 처음 삼감마을로 시집오고 나서 10여 가구가 함께 우물을 길어오던 옛 이야기를 하나 둘 실타내 처럼 풀어 놓았다.

“당산나무 윗집부터 산 밑 집까지 우리 집에 물을 길어오곤 했재. 오다가다 힘들면 당산나무 숲에서 걸음을 멈추고 잠시 쉬어가면서...”
“이제 수돗물이 나오니까 사람들이 올 일도 없고, 부러 갈 일도 없재”

이제 삼감마을 역시 달라진 세월 속에서 과거와 다른 공동체 생활을 이끌어가고 있다.
원래 숲을 이루던 느티나무 부근은 삼감 주민들에게 제를 올리는 신성한 자리였을 뿐 아니라, 여름철 시원한 그늘 아래 휴식을 취하던 곳이었다. 이곳에서 3개의 우물에서 길어온 물로 만든 음식을 나누며 함께 사는 의미를 나누었을 것이다.

삼감 주민들은 삼감 느티나무 뒤편에 말라서 밑동만 남아 있는 팽나무에는 본래 소리가 매우 큰 마을 종이 달렸었다고 한다. 종소리가 어찌나 큰지 저 멀리 밭일을 하는 주민들에게까지 마을 소식을 전하기에 충분했다고.

새마을 사업이 시작되기 전, 대부분의 농촌 마을이 그러하듯이 삼감마을 가구들도 초가집이었다. 그 때 장작을 패 겨울을 나던 시절. 어느 집에 불이라도 나는 날이면 마을 전체가 화마를 피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삼감마을은 마을 숲 팽나무에 달린 종이 울리면 들일을 하다가도 뛰어와 불길을 잡았기에 단 한 번도 큰 화재를 겪은 적이 없다고 한다. 화재가 아니더라도 마을에 큰일이 생겼을 때 마을 숲에 달린 종소리가 마을과 들녘 구석구석에 전해주는 전령사 역할을 톡톡히 해온 것이다.

단내 넘쳐나는 마을을 꿈꾸다
삼감마을은 마을 숲을 중심으로 펼쳐진 들판에서 곡식을 거두며 사시사철 맑은 물이 솟아나는 3개의 샘으로 평온한 생활을 엮어왔다. 동쪽 양산천변에는 숲 갓, 남쪽 들판에 아래숲 갓, 북쪽은 서당 갓으로 둘러싸인 삼감마을은 이 3개의 작은 숲들이 마을을 보호하며 서 있다.

풍수에 따라 동서남북을 숲으로 보호하고, 마을 중심에 느티나무와 당산나무로 마을을 이끌어온 셈이다.

삼감마을 주민들은 마을 숲 서편에 있는 들판에서 해마다 추수를 끝내고 나면 흥겨운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수확을 끝내고 남은 볏집 등을 엮어 새끼를 꼬고 차전놀이를 할 때 삼감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 숲을 중심으로 위쪽을 웃갓단, 아래쪽을 아랫갓단으로 편을 나누었다.
마을 잔치가 열리면 삼감 느티나무는 마치 심판인양 너른 가지를 활짝 펼쳐보이며 마을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을 게다.

새끼로 암줄과 숫줄을 꼬아 가운데 말뚝을 박아 두편으로 나뉘어 줄을 당기는 양산 줄다리기는 삼감마을의 자랑이었다.

인근 지역 아이들이 부러워하던 양산 줄다리기는 오랜 기간 삼감마을 주민들을 하나로 묶는 매개체였다.

하지만 하나 둘 마을을 떠나고, 농업이 아닌 도심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그 모습이 점차 사라져갔다. 그렇지만 여전히 삼감 느티나무는 제자리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어 마음이 애잔하다.

보호수로 지정되어 여전히 마을을 지키는 느티나무는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풍모를 지니고 있다.

굵은 가지 사이로 스쳐가는 바람은 삼감의 단물 내음을 싣고 사람들에게 평안함을 주었다.
둘레만도 3m가 넘는 느티나무 가지 위에 어린 시절 몸을 맡기고 단잠을 청하던 옛 추억도 이제는 여름철에만 잠시 마실 나온 어르신들의 발걸음만 이어질 뿐이다.

하지만 오늘 이 순간에도 삼감 느티나무는 산업화, 현대화로 변해가는 마을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묵묵히 삼감의 단내를 바람에 실어 마을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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