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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천 년을 함께하는 나무, 용당마을 은행나무..
사회

천 년을 함께하는 나무, 용당마을 은행나무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2/06 00:00 수정 2007.02.06 00:00

 양산노거수 이야기-  더불어 사는 큰나무마을마다 사연을 가진 나무들이 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이 땅을 지켜온 큰 나무들. 지난해 지역신문발전기금 저술사업을 통해 양산 곳곳에 우리 삶을 지켜온 큰 나무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책으로 엮어보았습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온 큰 나무들의 새 의미를 2007년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할 양산시민들과 함께 다시금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지면을 통해 나누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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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상읍 용당리 용당마을 은행나무

용문사 은행나무나 금산군 추부면의 은행나무처럼 천 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흔한 것은 아니지만 웅상읍 용당리에 수령 6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마을의 당산목으로 자리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환상적이고 애틋한 전설은 없지만 “이 자리에서 그대가 제 마음을 받아줄 때까지 천 년이든... 만 년이든...” 우리 곁을 지키는 은행나무가 있다는 것이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천 년을 기다려 왔는데 왜 아직도 제 마음을 모르시나요... 지금도 제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다릴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그대가 제 마음을 받아줄 때까지 천 년이든... 만 년이든...”

궁중악사 종문과 미단 공주의 이룰 수 없었던 애절한 사랑을 은행나무를 소재로 그린 영화, ‘은행나무침대’에서 집요한 사랑의 화신인 황 장군(신현준 분)이 한 대사다.
함께할 수 없었던 사랑은 두 그루의 은행나무로 환생하고 또 시간은 천 년을 흐른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은행나무가 얼마나 생명력이 긴 나무였으면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을까 싶다.

천년이라는 세월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나무가 이 땅에 얼마나 될까?

 

언제 보아도 너그러운 골목할배

가을걷이가 한창이라 마을에는 인적이 드물다.
“표지판에 다 설명돼 있으니까 내한테 물어보지 마이소. 우리는 잘 모릅니더”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은행나무에 대해 물어봐도 잘 모른단다.
은행나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용당상회 여주인에게 다시 물어봐도 자세한 건 이장님께 물어보란다.

긴 세월 마을공동체의 구심점이 되었을 은행나무에 대해 설명해줄 사람이 마을 이장 말고는 별로 없는 모양이다.

대대로 이곳에서 터전을 일구고 살아온 사람들이 하나 둘씩 대처로 나가고  문전옥답은 외지인들에게 공장과 창고로 내어 주었으니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던 당산나무 전설이 온전히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풍성한 그늘아래서 여유롭게 장기며 바둑을 두고 있는 노인들이라도 있다면 전설 한 토막이야 어렵지 않게 전해들을 수 있겠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수령이 600년이 넘었으면 숱한 전설을 가지고 있겠다는 질문에 대뜸 전설이야기는 온데간데 없고 나이 이야기부터 끄집어내는 이승갑 용당 이장이다.

“600살이 뭡니까 옛날에 어른들께 듣기로는 골목할배 나이가 천년도 넘었을 거라고 하대요” 용당 은행나무가 600살이 아니라 천 년을 이 마을과 함께 했다는 말이다. 

골목할배가 누구냐고 묻자 이곳 사람들은 용당 은행나무를 ‘골목할배’라고 부른단다. 마을의 당산나무로서 제법 그럴듯한 이름이다. 

나무 옆에 당집이 있어 당산제를 지내는지 물었더니 “일년에 한 번 정월 보름날 새벽에 부정 타지 않은 사람을 제주로 선정해 당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지금이야 연례행사처럼 어느 마을이나 비슷한 형태로 동제를 지내지만, 농사가 전부였던 시절에는 한 해의 농사와 길흉화복이 당산제에 달려있었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그러니 마을 사람들이 들인 정성이 오죽했겠는가?

짐작컨대 용당의 당산제에는 천 년을 지켜준 골목할배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지극한 외경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용당마을 은행나무는 높이 30m, 둘레 5.6m되는 고목으로 웅상읍의 은행나무로는 수령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현재의 줄기보다 훨씬 더 큰 줄기가 옆에 있었는데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고 한다. 패인 구멍 속에서 한 거지가 살게 되었고 어느 날 그 거지가 나무 구멍 속에 불을 내는 바람에 큰 줄기가 다 타버렸다고 한다.

수령에 비해 둘레가 생각보다 크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 모양이다.
용당마을의 은행나무가 겪어온 풍상은 오래 살아온 만큼이나 모질다.

그러고 보니 은행나무의 생명력은 대단하다.
고생대부터 지독한 빙하기도 이겨내고 살아남은 은행나무를 흔히 살아 있는 화석 나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만 자란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 가운데도 가장 많은 게 은행나무로 19그루이며 노거수로 지정된 은행나무도 800여 그루가 넘는다.

이것은 은행나무의 생명력과 저항이 얼마나 강한가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잡초보다도 더 모질게 살아온 우리네 민초들의 삶이 은행나무와 참 많이도 닮았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비약이 될까

다들 알다시피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다. 경북대 임산공학과 박상진 교수는 이에 대해 “봄에 잎과 함께 암꽃과 수꽃이 각각 다른 나무에서 핀다. 바람에 실린 꽃가루가 암꽃까지 날아가서 수정이 이루어진다. 꽃가루는 진기하게도 머리와 짧은 수염같은 꽁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동물의 정충처럼 스스로 움직여서 난자를 찾아 갈 수 있다”고 했다. 
용당 은행나무는 수나무다. 주변 어디엔가 있을 암나무에 꽃가루를 날려 열매를 맺게 해왔으리라. 누대로 살아온 이 땅의 조상들이 우리를 이 땅에 나게 했듯이...

한폭의 유화, 탑골수원지

창고와 고물야적장에 둘러싸여 고립무원의 섬처럼 서 있는 은행나무가 못내 답답하고 아쉬워 은행나무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자 이장님은 “용당에 와서 은행나무만 보지 말고 탑골저수지와 대운산도 구경하라”고 성화다.

웅상읍 끝자락에 자리해 울산과 경계하고 있는 용당마을은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지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울산시민의 젖줄인 회야천이 흐르고, 마을 뒤로는 양산 8경중에 하나인 대운산 자연휴양림이 자리하고 있어 휴일이면 등산객들의 발길이 잦고 여름철은 피서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해발 742m인 대운산은 동국여지승람에는 불광산(佛光山)으로 되어있다. 언제부터인가 큰 구름이 산을 감싸고 있다고 해서 대운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지금도 자연산 송이는 물론이고 심심찮게 산삼도 캔다고 하는 걸 보면 산이 깊기는 깊은 모양이다.

하여튼 대운산 주변의 계곡을 타고 흘러내린 물은 탑골 저수지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명주 실타래 하나가 모두 잠겼을 정도로 깊었다는 가매소(沼)를 지나 회야천으로 흘러간다. 1933년도에 이 계곡 중턱을 가로막아 축조된 탑골 저수지는 깊고 웅장하면서도 물이 맑다. 

저수지에 비친 산 그림자가  한 폭의 유화 같아 넋을 잃고 쳐다보다가 나무 한 짐 지고 내려오다 텀벙텀벙 계곡물에 발 담그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잠시 식혀갔을 용당 사람들이 그냥 그려졌다.
 
산도 가을도 깊어간다.
가을날 잠시 일체의 상념을 접어두고 은행나무 아래를 서성거려보라. 그러다 유년시절 은행나무에 얽힌 추억을 되살리고 황금빛으로 물든 은행잎 몇 장 주워 책갈피에 끼웠던 자기 자신을 보게 된다.
구름에 드리운 대운산의 가을이 용당 은행나무와 함께 깊어가는 날 어떤 시인의 노래처럼 나 스스로 노랗게 물드는 은행잎이 되어보는 것은 또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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