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잊혀져가는 그들의 숨은 사연을 들여다 보며 명절의 또 다른 의미를 되새겨 보자. -----------------------------------------------
277일이 지났다.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는 빈방에는 차디찬 냉기만 맴돈다.
지난해 5월 13일 웅상읍에서 함께 실종된 박동은(12. 백동초5), 이은영(14. 웅상여중2) 학생의 부모들은 설이 다가올수록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을 숨길 수가 없다. 지난 9일 박동은 학생의 어머니 정향숙(43)씨를 만났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 전화가 올지 몰라 외출도 못하고 하루 종일 전화만 기다리고 있습니다”하지만 간간히 걸려오던 제보전화도 끊어진 지 오래다. 정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이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 현실이 두렵기만 하다. 처음에는 지역의 각 시민·사회단체가 실종아동 찾기 운동을 활발히 벌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도움의 손길도 멈춰버렸다. “아이들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탓할 수만은 없는 일이죠. 어차피 가족들이 감당해내야 하는 일이니까요”담담한 어투로 말하지만 정씨의 눈에서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린다. 동은이 방을 살펴봤다. 집안 전체에서 불이 켜진 곳이라고는 동은이 방 밖에 없다. 동은이의 실종 이후 정씨는 날마다 방을 깨끗이 쓸고 닦고 딸이 평소에 아끼던 물건을 정리한다. 아이들이 실종된 지 9개월. 경찰 수사도 지지부진하다. 수사전담반을 꾸리며 의욕을 내비치고 있지만 사실상 제보에만 의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이들이 즐겨 찾는 장소를 돌며 동은이를 찾아 헤매고, 전단지를 돌리던 정씨는 이제 그마저도 포기했다. 그럴수록 마음이 더 아리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부산 노포동 버스 터미널에서 전단지를 돌렸지만 이제 포기했습니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무관심과 돌아서면 쓰레기통에 박혀있는 전단지를 보면 가슴이 더 아픕니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지만 집안에는 웃음이 없어졌다. 정씨는 “동은이와 은영이를 데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제발 부모들의 애타는 마음을 헤아려 집으로 돌려 보내달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