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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설, 그리고 봄
사회

설, 그리고 봄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2/13 00:00 수정 2007.02.13 00:00

설날이 18일이니 아직은 세밑이다. 입춘(立春 새봄)은 4일, 우수(雨水 빗물)가 설 다음날인 19일이다. 빗물, 빗물, 빗물 입속으로 오물오물 씹으니 참 살갑다. 세밑이지만 냉이초무침 같은 향내가 입안을 가득 채운다.

 

매양 추위 속에 /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 파릇한 미나리 싹이 / 봄날을 꿈꾸듯 // 새해는 참고 /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 오늘 아침 / 따뜻한 한 잔 술과 /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 세상은 /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 한 해가 가고 / 또 올지라도 //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 고운 이빨을 보듯 //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 김종길의 「설날 아침에」 전문

 

예전에 교과서에서 배워서이겠지만 새해나 설을 생각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시다.
미나리꽝도 설날쯤이면 조금씩 풀린다. 들여다보면 파릇한 미나리싹이 그 얼음 속에 파릇한 색을 찾아내고 그 옆에서 작은 송사리가 아가미를 달싹거리고 있다.
삶은 여전히 가난하고 세상은 각박하다지만 고맙게 생각하고 보면 푸지고 살 만한 곳이다. 따뜻한 봄날이 멀리 있지 않다.

 

볕살 따사로운 양지 녘이 더 검은 / 자장암 깊은 계곡 // 이제 얇아질 대로 얇아진 / 투명한 얼음 편(片)에 / 햇살은 / 가재(石蟹) 꼬리에 매달렸던 / 꼬물거리는 새끼들 / 한 마리 또 한 마리 / 이번엔 / 서너 놈이 무리 지어 / 떨어져 나간다 // 이윽고 / 물 속 가득 바글대던 햇살들 / 새끼 가재로 / 일제히 기어오른다 // 뽀송송한 씨앗들 / 햇살, 한 줌
― 졸시(拙詩) 「봄」 전문

 

입춘 지나면서 언 땅이 녹아 물기가 흐르면 땅은 검어진다. 검은 땅은 햇살에 더 따뜻해지고 계곡을 얼렸던 얼음도 녹아 투명한 얼음 조각이 얇아질 대로 얇아진다. 그 얇은 얼음 편에 흐르다 튄 물방울이 조롱조롱 매달렸다. 마치 가재 꼬리에 꼬물꼬물 매달린 새끼 가재 같다. 그 물방울 하나가 종잇장처럼 얇은 얼음으로부터 ‘톡’ 떨어져 나간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그렇게 떨어진 물방울들이 물속에서 햇살 받은 물방울 거품처럼 바글거린다.

삼월 새봄이면 유치원 입학하는 꼬맹이들 신이화(개나리꽃) 노란빛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신입생들 반짝이는 웃음으로 세상 넘실거릴 것이다.

입춘(새봄) 지나며 긴 겨울 가뭄을 달래는 단비가 왔다. 깊은 안개와 같이 온 가느다란 비가 봄기운을 살그머니 부른다. 큰절 천왕문 안쪽 매화 꽃봉오리 부풀리는 소리에 귀 밝은 이 잠 설쳤으리라. 오리나무, 땅버들 물오르는 소리로 산과 개울도 같이 밤새웠으리라.

 

문학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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