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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한 사람의 힘
사회

한 사람의 힘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2/20 00:00 수정 2007.02.20 00:00

모든 어머니에게 아이는 왕자다. 공주다. 아이들은 자라 각자의 제국을 건설할 것이다.
그 제국은 화려하기보다는 소박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제국에 왕이 되어 충실한 지어미(혹은 지아비)와 어여쁜 아이들을 거느릴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이 평범한 프로젝트는 운명적으로 어긋나기도 한다. 그가 혼혈이라는 슬픈 피를 가지게 된다면 적어도 우리 땅에서는 뿌리 내리기가 순탄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단일민족의 신화를 긍지로 여기고 있는 배달민족에게 혼혈은 지독한 상처이다.

학생들에게 혼혈아와 해외 입양아들에 대한 차별이나 경시가 잘못되었음을 가르치고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깨우치기 위해 초등 교과서에서 혼혈아와 입양아 문제를 다루기로 했다 한다. 반갑다고 해야 할까 슬프다고 해야 할까?

미국 슈퍼볼 영웅 하인스 워드가 한인 혼혈인이라는 사실은 혼혈 문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워드씨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느끼게 해 주는 대목이다. 만약 그가 부정적 영향을 준 인물이었다면 혼혈은 얼마나 큰 죄악이 되었을 것인가?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그 아이 혼혈아인
엄마를 닮아 얼굴만 희었던 / 그 아이는 지금 대전 어디서 / 다방 레지를 하고 있는지 몰라 연애를 하고 / 퇴학을 맞아 고아원을 뛰쳐나가더니 / 지금도 기억할까 그 때 교내 웅변대회에서 / 우리 모두를 함께 울게 하던 그 한 마디 말 / 하늘 아래 나를 버린 엄마보다는 / 나는 돈 많은 나라 아메리카로 가야 된대요

일곱 살 때 원장의 姓을 받아 비로소 李가든가 金가든가 / 朴가면 어떻고 브라운이면 또 어떻고 그 말이 / 아직도 늦은 밤 내 귀가 길을 때린다 / 기교도 없이 새소리도 없이 가라고 / 내 詩를 때린다 우리 모두 태어나 욕된 세상을 / 이 强辯의 세상 헛된 강변만이 / 오로지 진실이고 너의 진실은 / 우리들이 매길 수도 없는 어느 채점표 밖에서 / 얼마만큼의 거짓으로나 매겨지는지 / 몸을 던져 세상 끝끝까지 웅크리고 가며 / 외롭기야 우리 모두 마찬가지고 / 그래서 더욱 괴로운 너의 모습 너의 말

그래 너는 아메리카로 갔어야 했다. / 국어로는 아름다운 나라 미국 네 모습이 주눅들 리 없는 合衆國이고 / 우리들은 제 상처에도 아플 줄 모르는 단일 민족 / 이 피가름 억센 단군의 한 핏줄 바보같이 / 가시같이 어째서 너는 남아 우리들의 상처를 / 함부로 쑤시느냐 몸을 팔면서 / 침을 뱉느냐 더러운 그리움으로 / 배고픔 많다던 동두천 그런 둘레나 아직도 맴도느냐 / 혼혈아야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아이야
― 김명인, 「동두천Ⅳ」전문

우리가 가진 편견, 편협이 워드씨 한 사람의 힘으로 무너뜨리기에는 어쩌면 너무 단단한 벽이 아닐까? 혼혈만이 아니라 이방의 사람들에게 악수를 청할 줄 아는 날이 와야되지 않겠는가?
워드씨에게 한 사람의 힘을 보태어주자. 

배정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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