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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용이 승천하는 품새, 외송리 소나무..
사회

용이 승천하는 품새, 외송리 소나무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2/20 00:00 수정 2007.02.20 00:00

양산노거수 이야기-  더불어 사는 큰나무

마을마다 사연을 가진 나무들이 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이 땅을 지켜온 큰 나무들. 지난해 지역신문발전기금 저술사업을 통해 양산 곳곳에 우리 삶을 지켜온 큰 나무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책으로 엮어보았습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온 큰 나무들의 새 의미를 2007년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할 양산시민들과 함께 다시금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지면을 통해 나누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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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동면 외송리 외송마을 소나무

바늘잎나무가 사철을 사는 것은
그 뾰족한 입을 허공에 꽂고
산자락 가득 찬 공기를 배불리 빨아먹기 때문
단번에 잘려
기둥이나 마루판 되어서 오래 견디는 것은
그 뾰족한 침의 기억으로
달려드는 못된 것들을 모두 물리치기 때문

자꾸만 뾰족해지지 않으면 안되었던
제 허벅지를 찌르지 않으면 안되었던
긴긴 수절의 시간을 잊지 않았기 때문

꼭꼭
꾹꾹
최영철 시 ‘’내가 소나무 잣나무 같은 것이었을 때’

외송 당산나무라고 뭐 다를 게 있으랴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외송마을 소나무를 찾아 나섰다.
양산 시내에서 웅상읍으로 가는 길, 내송 삼거리 지나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동면초등학교가 나온다. 학교 담을 따라 마을 안길로 들어서면 길 위로 또 길, 고속도로다.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두 그루의 소나무.
고개를 들어 나무를 본 순간 범상치 않은 기운이 전해져 오며 보는 이를 압도한다.
하늘로 솟구치려는 독수리, 아님 활주로에서 충분히 동력을 높인 후 이제 막 이륙하려는 콩코드 비행기가 뇌리를 스친다.

잡풀 속에 덩그러니 서 있는 표지판을 보니 제12-14-3-1호란 고유번호를 부여받은 수령 200년, 품격 면 나무란 명찰을 달고 있다. 품격, 이 역동적인 자태의 소나무가 겨우 면 나무라니. 품격의 기준이 무엇일까.  나무의 나이, 둥치의 굵기, 나무 모양, 어느 것이던 이 소나무에 품격을 매긴 이들의 안목이 의심스러운 순간이다.

소나무에 다가가니 명태 한 마리가 새끼줄에 엮여 둥치에 매 달려 있다. 지난 정월 보름 주민들이 동제를 모시고 소나무에 바친 제물이다.
일반적으로 보자면 들고양이 따위가 벌써 명태를 빼내 갔으련만 범상치 않은 자태 때문일까, 아니면 나무가 주는 신령스러운 기운 때문인지 명태는 온전한 형태 그대로였다.
수려하게 뻗은 가지가 땅에 닿을 듯 휘늘어졌는데 너무 위태했던지 철제 지지대 6개가 간신히 받치고 있다.

보호수에서 몇 걸음 떨어져 있는, 처음에 당산나무로 여긴 곧추 선 소나무. 밑둥치가 상했던지 나무 의사가 수술을 했다.

그러고 보니 제법 큰 새집이 똬리를 틀고 있는 위쪽 가지도 상했다. 비록 면 보호수로도 지정받지 못했지만 소나무가 가진 기개를 잃지 않고 의연한 모습이다.
마을 들머리에 있는 금정상회. 주민들이 모여 술잔을 나누고 있다. 소나무에 대해 묻자 백성태 이장이 “마을의 신령수다. 용이 승천하기 위해 땅을 박차고 솟아 오르는 형국”이라고 전한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나무 모양이 그렇고 여느 소나무와 달리 용의 비늘 같은 소나무 껍질도 예사롭지 않다. 주민들이 소나무를 신령스럽게 여기는 마음이 읽히는 대목이다.
나무 나이를 물으니 “표지판에는 수령 200년이라 돼 있는데 200년 말도 안 돼, 아무리 못해도 300년 이상은 됐다”고 한다. 나무 나이가 그 정도 되니까 방송국에서 취재도 해 간 것 아니냐고 한다. 나무에 대한 주민들의 자긍심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재앙 막으려 심은 당산나무 
이 소나무는 수백 년 전 북쪽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재앙을 막기 위해 심었다고 전해진다. 누가 심었는지는 황씨, 우씨, 백씨로 갈라진다. 주민들은 대체적으로 황씨가 심었다는 데에 동의한다.

주민들이 전하는 에피소드 하나. 모 기업체 사장이 몇 년 전 이곳을 지나가다 이 소나무를 보고는 한 눈에 반해 살 수만 있다면 가까이 두고 싶다며 팔라고 했다.

그러나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라 팔 수가 없다고 하자 매우 아쉬워하며 대신 소나무를 극진히 보살피고 있다고 한다. 사람을 보내 전지를 하고 소나무가 병에 걸릴까 봐 혈액주사를 놓아주는 등 사비를 들이며 살뜰히 아끼고 있다.

최근 주민들은 마을 뒷산에 지내던 산신제를 다시 모신다. 10년 전쯤 산신제를 지내지 않고부터 장가 못 가는 노총각이 늘고 부쩍 홀아비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란다.
당산나무에 기울이는 주민들의 마음 씀씀이도 더 살뜰해졌다.

애초 당산나무 옆에는 선비처럼 의연한 모습을 한 소나무 한 그루가 더 있었다. 그런데 솔잎혹파리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주민들은 그 때문에 주택공사가 외송리에 주공아파트를 지으려 하는 일이 생겨 마을이 쇠퇴하게 생겼다며 걱정하고 있다.  21세기에 이 무슨 말이냐고 하겠지만 나무 한 그루도 신성하게 생각하는 마음 어진 이들의 심성이 그렇다.

너름 소나무. 주민들은 수종을 묻자 대뜸 청도 운문사에서 당산나무와 똑같은 소나무를 봤다며 이처럼 말했다. ‘이 땅의 큰 나무’ 를 쓴 김규홍도 가지가 마치 수양버들처럼 아래로 처지는 특징을 가진 ‘처진 소나무’를 언급하며 운문사 천연기념물 제180호 소나무를 예로 들고 있다.
예전처럼 동제를 모시고 나면 주민 모두가 나와 제물을 나누어 먹으며 풍물을 치고 놀던 문화는 사라졌다.

그러나 부녀회, 청년회가 중심이 되어 15년째 5월 8일 경로잔치를 열고 있다. 이 잔치에는 출향인들까지 십시일반으로 마음을 보태고 있으니 각박한 세태에도 외송마을은 공동체 정신을 이어가려 애쓰고 있다. 그런 주민들의 가슴에는 삽량 저자 가던 길목에 서서 드높은 기개를 자랑하던 당산나무가 사철 푸르게 자라고 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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