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지역에서 건강장수마을 프로젝트를 시행하며 ‘건강’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말과는 전혀 무관한 곳이 있다. 의료시설과 교통편 부족으로 사소한 감기를 폐렴으로 키우는 사람들. 바로 의료취약지역 주민들이다. 강원도 두메산골 이야기로 들릴 수 있으나 우리가 사는 양산에도 이런 곳이 있다. 인구대비 노인비율이 가장 높은 원동면이다. 의료와 교통 두 방면 모두에서 외면 받아 병을 키울 수밖에 없는 원동주민들의 사연을 들어보자.
-------------------------------------------------------------“병원? 한 군데도 없어. 병만 키우지”농촌지역 노인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양산에서 가장 노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원동면은 의료취약지역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원동면에 살고 있는 사람은 3천9백여명. 이 가운데 만65세 이상 노인인구는 880여명으로 전체 인구대비 노인인구비율이 22%에 달한다. 시 전체 노인인구비율이 7%이고, 이 중 하북면 13%, 상북·동면 10%, 웅상읍 8%, 물금읍 7%, 강서동 6%, 삼성동 5%와 비교해 볼 때 원동면은 노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원동면에 의료시설이라고는 면사무소 옆에 위치한 초라한 보건소 하나뿐이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민간병원은 개원조차 한 적이 없고 그나마 약국도 하나만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원동 주민들은 병이 나도 20여Km 떨어진 시내에 나가서야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게다가 불편한 대중교통은 나이 많은 주민들이 병원으로 가는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원동면 보건지소(소장 남종길)에는 진료를 받기 위해 한 달 평균 400여명의 환자가 몰리고 있지만 치과와 내과 공중보건의 두 명과 직원 두 명이 이를 모두 감당하고 있다. 그마저도 토·일요일에는 근무하지 않고 야간에도 상주 인원이 없기 때문에 주말과 야간시간에는 의료공백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올해부터 읍·면 단위에서 병원과 약국 가운데 하나만 있거나 병원, 약국과 거리가 1.5Km이상 떨어진 곳이 해당하는 의약분업 제외지역으로 지정돼 보건소에서 약을 처방할 수 있게 돼 그나마 형편이 좀 나아졌다. 그렇지만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여전히 속수무책인 상황. 응급상황이 발생하고 15분이 지나면 환자 생존율이 30%로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응급차는 현장 도착시간 5분을 제외하고 적어도 10분 내에 병원에 도착해야 하지만 응급차량이 없는 탓에 제일 가까운 물금소방서에서 차량지원을 나오는 데만 30분 이상이 걸린다. “멀어서 못 가. 차라리 아프고 말지”원동면에서 병원을 가기 위해 시내로 나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원동면에서 시내로 한 번에 가는 버스 노선이 없다. 배내골과 같이 안쪽 마을 주민들은 마을버스를 타고 원동역까지 나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한다. 하지만 하루에 8번 운행하는 버스(원동~시외버스터미널)는 배차간격이 2~3시간이고 그마저도 마을버스와 시간이 잘 맞지 않아 30분 넘게 시내버스를 기다려야 비로소 시내로 갈 수 있다. 이렇게 대중교통을 이용해 시내로 나가는 데만 2시간이 걸린다. 시내로 나가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다시 돌아오면 대략 5시간 정도가 소요되니 병원 한번 다녀오는데 반나절이 걸리는 셈이다. 대개 농사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들은 “버스 배차시간이 너무 길고 시간도 오래 걸려 병원에 갈 엄두를 못 내고 설혹 간다하더라도 일을 못하니 굶어죽게 생겼다”며 “차라리 아프고 말지”라고 손사래를 쳤다.원동면에서 시내로 나가는 또 다른 방법은 콜택시를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택시기사들이 오기를 꺼린다. 실제로 기자가 버스시간이 맞지 않아 택시를 이용해 원동으로 갈 때 택시기사들은 “원동은 웬만해서는 가지 않는다”고 했다.택시를 타고 원동면 함포마을까지 걸린 시간은 40분. 요금 1만7천원이 나왔다.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원동면 사정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요금이다.
주민들이 콜택시를 타고 병원을 갔다 올 경우 시간은 3시간 정도 줄어들지만 일반적으로 진료비 3천원에 택시비가 3만원이 넘게 드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다.“잘못되면 그날이 마지막이야”원동면 보건지소 남종길 소장(공중보건의)은 “원동면은 시내 병원까지 왕복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이기 때문에 사실상 응급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양산의 대표적인 의료사각지대”라며 “며칠 전에도 이마 부분에 동맥이 찢어진 환자가 있어 이웃집 차량에 태워 시내 큰 병원으로 보냈다”며 응급구조차량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또 함포마을 새마을협의회 최동렬(50) 회장은 “몇 년 전 독사에 물린 주민이 119구조대가 오는 것을 기다리다 그만 이송 중 숨지고 말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응급환자의 경우 이런 문제가 조금이나마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원동문화체육센터 옆에 신축중인 원동소방파출소가 오는 3월 완공되면 응급차량을 포함한 차량 3대가 배치될 예정이다. 소방서 관계자는 “현재 원동면에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출동시간만 30분이 걸려 어려움이 크다”며 “원동소방파출소가 완공되고 차량이 지원되면 이런 불편이 다소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응급차량 배치에 대해 원동면 주민들은 이를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상황이 크게 나아질 것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다. 문아무개(81)할머니는 “응급차량이 들어오면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일반 환자에게는 별다른 도움이 안 될 것”이라며 “특히 차량을 타고 장시간 이동하지 못하는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있으나 마나’라며 지역에 의료시설이 확충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조원정 인턴기자 / vega576@ 유재수 인턴기자 / luckygu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