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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사회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3/06 00:00 수정 2007.03.06 00:00

삼일절 노래. TV에서 들은 삼일절 노래는 문득 30년 전의 초등학교 시절로 나를 데려갔다. 노래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온 지점에는 다시 태극기 휘날리는 폭주족들의 질주.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는 인권(人權)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貞操)냐." 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한용운 <당신을 보았습니다> 중에서

주권을 상실함으로써 집도, 민적도, 인권도, 정조도 다 잃어버린 상실의 시대. 그 시대에 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썼을 것인가? 아무도 시대적 책무에서 자유로운 시인은 없었다. 발 벗고 일제의 원숭이가 된 경우야 말할 거리가 못된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목숨을 위해 아첨의 붓을 들었을 이들에게 나는 화살을 겨눌 용기가 없다.

그들의 고뇌를 지금의 내가 무슨 근거로 재단할 것인가? 단지 양심을 지키기 위해 한없이 괴로워하고 행동했던 시인들에게는 끝없는 경외의 마음을 가질 뿐이다.

영랑 또한 그런 시인이다. 영랑은 1903년 전남 강진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때는 강진에서 학생운동을 모의하다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6개월간 심한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섬세하고 감각적이며, 율격이 뛰어난 영랑의 시를 우리는 흔히 순수시로 분류한다. 그러나 그의 시를 이러한 시적 요소나 유파적 성향에 따른 분류로 단순히 ‘순수시’라 말하기보다는 그는 정신적 측면에서 더욱 순수하다.

내 가슴에 독(毒)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害)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어도 머지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 세대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한듸!’ 독은 차서 무엇 하느냐고? //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
-김영랑 <독을 차고> 전문

시작 활동의 후기에 쓴 시라 할 수 있는 이 시는 한 시인의 시대적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떤 고민도 없다. 가슴에 독을 차고― 누구를 해치기 위한 독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독을 차고 의연히 살아가리라는 의지와 결단만이 이 시의 전부다. 결국 허무한 삶이 되겠지만 내 마음을 잃지 않는 것, - 초기의 그는 상심과 슬픔으로 가득한 마음을 줄곧 노래했다. - 죽는 날, 내 외로운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서 독을 차고 가리라는 그의 노래는 비장하고 아름답고 높다.

호국 영령들의 영전에 깊이 머리 숙이며.

배정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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