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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마흔의 시(詩)―정선에게..
사회

마흔의 시(詩)―정선에게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3/20 00:00 수정 2007.03.20 00:00

흔히 마흔을 불혹(不惑)이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우스개처럼 유혹(誘惑)이라고 말한다.
그 농담 속엔 뼈가 있다. 불혹이라 하던 예전의 마흔과 지금의 마흔은 같은 의미의 마흔이 결코 아니다. 세상이 달라지면서 마흔은 반대항의 마흔이 되어버렸다. 

서른아홉을 아퀴 지은 마흔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나이인가보다. 앞 세대 시인들에게 마흔은 오후 세시 같은, 새로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손을 놓아버리기엔 너무 이른, 그런 마흔이었다. 그러나 이즈음의  마흔은 젊고 젊은 나이다.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生)이 마구 가렵다/ 어언 내가 마흔이라는 사실에 당황하고 있을 때,/ 하늘은 컴퓨터 화면처럼 푸르고/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왜정 시대의 로마네스크식 관공서 건물 그림자를/ 가로수가 있는 보도에까지 늘어뜨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내가 어떻게 마흔인가/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病名)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나는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며/ 11월의 나무는/ 아직도 살려고 발버둥치는 환자처럼, 추하다/ 그래도 나무는 여러 번 살아서 좋겠다
- 황지우,「나무는 여러 번 살아서 좋겠다」전문

정선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더니 손에는 붕대를 감았다. 달라진 건 마흔이 된 것 밖에 없는데, 나이가 드니 주의력이 떨어져 그런 모양이라며 웃는다.

그녀는 수성(水性)이다. 로즈 힙이라는 차를 마시고 하루에 물을 4리터나 마셔대는 화장기 없는 얼굴. 하루 종일 구석진 자리에 앉아 수학 문제를 푸는 그녀를 보면 나도 머리를 싸매고 수학 문제나 푸는 사람이 되어도 좋았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온통 심각해져서 세상을 수식 속에 가두고 부지런히 연필을 움직이는 손. 그녀는 늘 그런 풍경을 연출한다.

먼저 말 걸지 않으면 말이 없는 그녀가 간간이 우스개 농담을 걸어오는 걸 보면서 나는 그녀가 마흔이 되었으니 그럴 수 있는 거라 생각하고 있다. 세상의 선이나 면, 각도들이 마흔쯤에는 입체가 되는 시점이니 말이다.

수풀이 온통 산발을 하고/ 어지럽게 흔들어/ 갈피를 못 잡는 그리움에 살았다./숨가쁜 나무여 사랑이여.
이제 마흔 가까운/손등이 앙상한 때는/ 나무들도 전부/ 겨울 나무 그것이 되어/ 잎사귀들을 떨어내고 부끄럼 없이/ 시원하게 벗을 것을 벗어버렸다.
- 박재삼, 「겨울 나무를 보며」 중에서

마흔을 넘기고는 숨가쁜 젊은 시절, 되돌아보면 많은 부끄러운 기억들, 다 떨어내고 시원해진 “노을 속 한 경치”를 그린다.

배정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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