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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고향집 할아버지 할머니와 닮은
백록리 나무 두 그루..
사회

고향집 할아버지 할머니와 닮은
백록리 나무 두 그루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3/20 00:00 수정 2007.03.20 00:00

 양산노거수 이야기-  더불어 사는 큰나무

마을마다 사연을 가진 나무들이 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이 땅을 지켜온 큰 나무들. 지난해 지역신문발전기금 저술사업을 통해 양산 곳곳에 우리 삶을 지켜온 큰 나무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책으로 엮어보았습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온 큰 나무들의 새 의미를 2007년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할 양산시민들과 함께 다시금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지면을 통해 나누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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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하북면 백록리 나무 두 그루

하북면 백록리에는 어떤 문서보다도 상세하고 어떤 사진보다도 선명하게 마을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두 그루의 나무, 바로 진목마을의 팽나무와 중리마을의 느티나무가 있다.
한 그루의 나무는 마을 어귀에서 마을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길을 인도하고 삶을 상담해 주는 자상한 할아버지의 모습과 닮아있다. 또 한 그루는 산자락 아래서 맛있는 그늘과 재미있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려주며 마음의 평온과 웃음을 찾게 해주는 할머니의 모습과 닮아있다.
특별취재팀

 

백록리 역사의 산증인

하북면은 양산시의 최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작은 행정구역이기 때문에 상세한 면역사 자료를 찾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하북면 백록리에는 이 마을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어 굳이 역사 문서를 뒤져볼 필요가 없다.

어떤 문서보다도 상세하고 어떤 사진보다도 선명하게 마을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두 그루의 나무, 바로 진목마을의 팽나무와 중리마을의 느티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한 그루의 나무는 마을 어귀에서 마을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길을 인도하고 삶을 상담해 주는 자상한 할아버지의 모습과 닮아있다.
또 한 그루는 산자락 아래서 맛있는 그늘과 재미있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려주며 마음의 평온과 웃음을 찾게 해주는 할머니의 모습과 닮아있다.

할아버지의 자상함을 담은 진목마을 팽나무

상북면 백록리는 두 나무와 동갑내기로 300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백학(白鶴), 중리(中里), 진목(榛木), 녹동(鹿洞), 새동네 등 5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팽나무가 있는 진목마을은 도토리 열매가 열리는 참나무가 우거진 마을로 유명했다고 한다.

도토리 묵 하나만으로도 기가 막힌 안주거리가 되었기에 길가던 나그네들이 쉬어가는 주요 길목이자 쉼터 역할을 해왔던 곳이다. 이 때문에 진목마을을 ‘참나무정’ 또는 ‘주막각단’이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마을 뒷산에 삼국시대 초기 또는 그 이전으로 추정되는 고분군이 약 300여기(지금은 도굴된 흔적만 남은 상태)가 남아 있다. 이것으로 보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오래 전부터 집성촌이 있었던 전통 있는 지역으로 추정하고 있다.
양산에서 언양으로 가는 35번 국도를 따라 내원사를 지나면 이내 백록리로 접어들게 된다. 백록리 입구로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허리가 숙여지는 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게 된다.

진목마을을 무심히 오가는 사람들도 이 나무를 보면 ‘분명 마을과 큰 인연이 있는 나무일 거야’라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 해 봄 직하다. 연륜에서 묻어나는 기품이 마을의 액을 쫓아내는 마을장승 같기도 하거니와 조금만 더 시선을 고정하고 바라보면 자상한 우리네 할아버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1982년 11월 10일, 보호수로 지정된 이 팽나무의 고유번호는 12-14-7-3호이다.
키는 15m로 옆 건물의 지붕높이를 훌쩍 넘어있고, 4.7m에 달하는 나무 둘레를 따라 검푸른 이끼가 잔뜩 낀 모습에서 300년의 연륜이 물씬 풍겼다. 바닥에서 약 4m 지점에 줄기가 5~6개로 갈라져 힘차게 하늘로 뻗어 있어 느티나무 정자목 못지않는 큰 그늘을 만들고 있다.

이 팽나무는 오른쪽은 중리마을이요, 왼쪽은 녹동마을, 앞으로 계속가면 다시 국도를 만나는 사거리에 자리해 있어 자연 속 보다는 사람 속, 마을 속에 들어와 있다.
그래서인지 마을 사람이 또 다른 인연을 만나러 가는 정거장이 되어 주기도 한다. 이 팽나무 아래는 진목마을의 유일한 버스정거장으로 마을을 오가는 길손들을 마중하고 배웅하는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있다.
 
할머니의 푸근함을 담은 중리마을 느티나무

중리마을은 진목마을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난 조그만 길을 따라 경부고속도로를 건너 꼬불꼬불한 길을 꽤 들어가야 보인다.
어떤 모양인지, 어떤 색깔인지는 모르지만 마치 꼭꼭 숨겨놓은 꿀단지는 한눈에 알아보는 것처럼 마을 언저리에 들어서면 ‘이곳이 바로 중리마을이구나’라고 단번에 알 수 있다. 중리마을은 백록리에서 한 가운데 위치한다하여 ‘중리’라 불렸다.

느티나무는 둥그런 중리마을을 들어서 보현정사라는 사찰로 향하는 어귀에 자리잡고 있다. 진목마을의 팽나무보다 더 빠른 1978년 8월 12일 보호수로 지정되었으며, 그 높이는 10m이고 둘레는 3.4m, 수령은 300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느티나무는 가히 300년이라는 연륜을 짐작하고도 남을 만큼 큼직큼직한 옹이가 나무 둘레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쪼글쪼글하게 주름이 지고 거무스름하게 검버섯이 핀 할머니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아주 친근한 그 모습과 흡사하다.

300여년간 마을의 대소사를 지켜보며 우리네 사람살이를 간직하게 되는데, 마치 그 오랜 모든 것들을 이 옹이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파란 지붕 집의 억울한 이야기를 옹이 하나, 감나무 집 아들 득남 이야기도 옹이 하나, 마을 구멍가게 금실 좋은 노인부부 이야기도 옹이 하나로 만들어 소중히 담고 있는 모습이 가슴 저미게 정겹다.

나무에게 해 입히면 안 되죠

진목마을과 중리마을은 행정구역상 두 마을로 분리되어 있지만 실제 생활권은 한 마을이나 진배없다. 때문에 진목마을 팽나무와 중리마을 느티나무의 당산제는 매년 3월 3일 함께 지낸다고 한다.

제주는 주민들 가운데 연장자를 중심으로 뽑지만 과거처럼 까다롭게 제주를 뽑지는 않는다. 다만 후덕한 마을인심처럼 그저 특별한 근심 걱정이 없는 사람을 우선한다. 
제물은 일반 제사 음식과 차이가 없고, 전후 3일간 당목 주변에 금줄을 쳐 부정을 타는 것을 막았다. 이처럼 백록리 마을 사람들은 두 그루의 나무를 신앙으로 받들고 있다.
당산나무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자 마을 사람들과 애환을 함께 하는 마을 공동체의 상징이기도 하다.

성스러운 나무를 누가 감히 함부로 할 수 있으며, 누구든지 나무를 베거나 해치면 큰 재앙을 입게 되고, 천재지변으로 나무가 쓰러지거나 다쳐도 그 마을은 화를 면치 못한다고 믿었다.
이렇듯 백록리 나무는 옛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숭배의 대상이었다. 백록리 사람들이 두 그루의 나무를 숭배한 것도 오랜 세월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베풀 줄 아는 마을 어른 같은 그 덕을 기리기 위함일 것이다.

우리네 할아버지처럼, 우리네 할머니처럼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이제 자람이 없는 퇴행의 길에 접어든지 오래지만 자상함과 푸근함은 지속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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