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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무지개에 부쳐
사회

무지개에 부쳐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4/03 00:00 수정 2007.04.03 00:00

통도사 자장암 벚나무에 꽃이 눈부시다. 꽃보다 사람에 관심이 더 많은 것은 크게 변함이 없지만, 이제는 무심했던 꽃잎이 보이고 산이 보이니 놀라운 일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참 우연찮은 일이기도 하고 우연한 일이기도 하다. 산을 오르기로 마음먹은 것이 오른쪽 무릎이 시큰거려서만은 아니었다. 지극히 우연이었다. 의기투합하여 산을 오르기로 하고 산행회 이름을 <늘 함께>로 정했다. 늘 함께 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아름다운 작명이었다.

급기야 산행에 빠지면 무시무시한 액수의 벌금으로 서로를 구속하기 시작한 것은 과도한 애정이기도 했다. 애정은 결국 우연을 인연으로 만들어버렸다. 우연이 인연으로 바뀐 그 상투성 속에는 산이 있었다. 자연의 위대한 힘을 실감한다.

공중부양 같은 이야기로 산길을 떠들썩하게 한 건 나이에 맞지 않는 모양새이기도 했지만 마냥 즐거웠다. 처음 산에 올라 시산제를 올리던 영축산 그 어디(한동안 정상을 오르지 않고 쳐다보기만 하는 비정상적인 산행팀이었다.) 우산을 쓰고 걷던 백련암 뒷길, 낙엽에 발목이 푹푹 빠지던 노전암 가던 길…

다들 사는 방식이 다르고 나이도 다르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만이 기본 자세였다. 그러니 아무 것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산의 마음, 자연의 본성이 아니겠는가? 참나무가 소나무를 간섭하지 않는 것, 바위가 소나무에게 뿌리 내릴 자리를 조금 내어주는 것, 그런 류의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산을 빌미로 세력을 꾸미려는 이들은 음흉하다.

하늘의 무지개 바라볼 때면
내 가슴은 뛰노라.

내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이러하거니
내 늙어서도 그러하리니
그렇지 않다면 죽은 것이니.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건대 내 삶의 하루하루여
자연의 경건으로 이어지기를.
- 윌리암 워즈워드, 「무지개」

이 시는 ‘늘 함께’ 산행 대원이신 강세님의 애송시다. 문학청년이었다는 그는 여전히 시를 사랑하고 자연을 탐내는 문학중년이다. 그의 자연주의 시관은 시어의 소박함과  가식 없음을 제일로 친다. 말장난에 기교뿐인 시를 성토하는 그는 워즈워드의 시가 번역시임에도 주는 감동의 보편성을 높이 산다. 시란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고.

아직 어설픈 시인인 나는 그의 말을 새겨 듣는다. 독자 없는 곳에 시인이 설 자리가 어디 있으랴.

배정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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