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속으로 들어오면 자연스레 식물이 되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하산길로 접어들었을 때는 어느 골짜기에 숨어 있었는지 나타난 낯선 사람들!
산을 다 내려왔을 때 쯤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이 사람을 잡아끈다. 여인 둘이 위쪽에서 머리를 감았는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고 있다. 아직은 물의 냉기에 손을 담그기도 쉽지 않은데 용감한 여인들이다. 여름이 오면 이 물에 탁족을 한번 해 보리라.휴대폰 안 터지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살갑다. 아주 적적한 곳 늦겨울 텅 빈 강원도 골짜기도 좋지만, 알맞게 사람 냄새 풍겨 조금 덜 슴슴한 부석사 뒤편 오전(梧田)약수 골짜기 벌써 초여름, 산들이 날이면 날마다 더 푸른 옷 갈아입을 때 흔들어봐도 안 터지는 휴대폰 주머니에 쑤셔 넣고 걷다 보면 면허증 신분증 카드 수첩 명함 휴대폰 그리고 잊어버린 교통 범칙금 고지서까지 지겹게 지니고 다닌다는 생각! 시냇가에 앉아 구두와 양말 벗고 바지를 걷는다. 팔과 종아리에 이틀내 모기들이 수놓은 생물과 생물이 느닷없이 만나 새긴 화끈한 문신(文身)들! 인간의 손이 쳐서 채 완성 못 본 문신도 있다. 요만한 자국도 없이 인간이 제풀로 맺을 수 있는 것이 어디 있는가?- 황동규,「탁족(擢足)」휴대폰 안 터지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살갑다고 말하면서 휴대폰을 흔들고 있는 나. (애초에 꺼버리면 될 게 아닌가?) 꺼버리지 못하는 인간적임. 적적하고 텅 빈 골짜기를 찾아 가고 있지만 머릿속은 교통범칙금 고지서까지 지고 다니는 그 또한 인간적임. 거기에는 어떤 반성도 읽히지 않는다. 그 적적한 혼자의 시간, 긴 산행길에 무언들 생각지 못하겠는가? 반성이든 뼈아픈 후회든. 그냥 머릿속에 지나가는 생각일 뿐이다. 그런 까닭에 탁족에도 탁족 이상의 의미가 없다. 창랑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는 시인의 책무도 처세도 없는 것이다. 발을 씻으며 “요만한 자국도 없이/ 인간이 제풀로 맺을 수 있는 것이 어디 있는가?”라는 생각도 가져봄직 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조차 없이 무심히 발 담글 수 있기를 홀로이 꿈꾸어 본다. 배정희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