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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장애인의 날 특집
부러진 날개로 세상을 날다..
사회

장애인의 날 특집
부러진 날개로 세상을 날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4/17 00:00 수정 2007.04.17 00:00
19세에 버스전복사고로 오른팔 잃어
꾸준한 재활훈련 끝에 달력업체 취직

겪어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오른쪽 팔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기분을 말로 설명한다고 알 수 있을까. 그래서 장애를 겪지 않은 사람은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장애라는 것에 경계가 있을까. 세상에 날 때부터 장애를 지닌 사람보다 살아가면서 장애를 입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렇기에 너도나도 언제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힘들어서 몸부림치면서 잠들고 잠에서 깨어나면 현실이 아니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도 오른쪽 팔은 여전히 없었어요. 정말 죽고만 싶었죠”
자고 일어나보니 세상이 바뀌었다는 말이 있다. 서홍식씨에게 지난 6년이 그랬다. 자고 일어나보니 오른쪽 팔이 없어졌고 그 후로 인생이 달라졌다.

서홍식(25)씨는 어릴 적부터 알콜중독 아버지 때문에 삶이 힘들었다. 어머니와 함께 도망치듯 양산으로 이사를 와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고 19세에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열심히 돈을 벌어서 예쁜 집도 짓고 어머니와 행복하게 살고만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편이 돼주지 않았다.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대형버스가 전복이 돼 오른쪽 팔이 깔려버린 것이다. 3번의 큰 수술을 했지만 결국 팔을 절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눈물이 앞을 가려요. 그 고통을 어떻게 말로 설명하겠어요. 매일 신음하면서 희망없이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아들을 보는 게 죽는 것 보다 더 힘들었어요”

어머니 박정숙(59)씨는 자신마저 무너지면 아들이 견디기가 더 힘들 것 같아 언제나 눈물을 가슴으로 삼켜야만 했다. 꽃다운 나이에 삶을 포기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아들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사고 후 2년 만에 경남지체장애인협회 양산시지회를 알게 됐다고  한다.

“장애인협회에 나가면서 제 삶이 달라졌어요. 그 전까진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저와 같은 장애를 지니고 당당히 살아가는 박창수 사무국장님을 보고 힘을 냈어요”

서홍식 씨는 남들에게는 아주 간단한 일부터 차근차근 계단을 밟으며 세상과 새로운 만남을 시작했다. 먼저 차를 타는 것부터 연습을 해야 했다. 차사고로 팔을 잃었기 때문에 차만 타면 열이 나고 멀미를 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끝에 버스를 타고 장애인협회까지 혼자 다닐 수 있게 되자 협회에서 중고컴퓨터 한 대를 구해줬다.

처음엔 왼손으로 밥을 먹기도 글씨를 쓸 수도 없는데 무슨 컴퓨터냐며 거부했었다는 서홍식씨. 하지만 협회 선생님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조금씩 마우스를 잡고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왼손만으로 타자를 치다보니 어깨와 허리가 너무 아파 타자연습을 하루 하면 이틀을 누워있어야 하는 생활이 반복됐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2달 만에 왼손만으로 200타를 치게 됐을 땐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고.

이제는 포토샵 가르쳐준 협회 선생님들을 자신이 가르친다며 수줍은 웃음을 짓는다. 이런 그의 노력이 최근 결실을 맺었다. 부산직업능력개발센터에서 미디어 출판편집을 공부하던 그가 2개월 실습과정을 거쳐 지난 월요일부터 정식출근을 하게 된 것이다.

“살아가다보면 저마다 다른 모습을 지닌 고비가 나타납니다. 그것이 저처럼 장애일 수도 있죠. 그동안 힘들게 지내왔던 세월은 더 높게 날기 위해 움츠렸던 거라고 생각해요. 이젠 부러진 날개로 세상을 나는 법을 배웠으니 힘차게 높이 날아갈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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