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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가있는 마을- 신 록
사회

시가있는 마을- 신 록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4/24 00:00 수정 2007.04.24 00:00

지난 일요일 늦은 시간에 집사람이랑 둘이서 드라이브나 하자며 평소 잘 가지 않던 샛길, 작은 길 찾아 몇 시간 돌아다녔다. 자투리 밭이랑 두둑에 유채꽃(삼동추꽃)이 노랗게 어우러진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자운영 붉은 그늘 아래 하얀 비닐을 씌운 못자리한 논이 군데군데 보였다.

가지산 자락 아래 가천에서 작천정 넘어가는 길을 따라 가자니 영화 화면으로 잡으면 참 평화스럽게 보일 낮은 둔덕이 활처럼 둘러 내린 마을이 보였다.
“저기 언덕 자락에 텃밭 있는 나지막한 집 한 채 짓고 살았으면 좋겠네.”
밀 이삭은 아직 패지 않았지만 보리밭엔 희끗한 보리 허리통도 보이고 보리이삭이 바람결에 쓸리는 모습이 정겨웠다.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 / 바람은 넘실 천(千)이랑 만(萬)이랑 / 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 꾀꼬리는 여태 혼자 날아 볼 줄 모르나니 / 암컷이라 쫓길 뿐 / 수놈이라 쫓을 뿐 / 황금빛 난 길이 어지럴 뿐 /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 산봉우리야, 오늘 밤 너 어디로 가 버리련?
김영랑의 「오월」전문

이제 아이들에게 들길은 마을에 들자 검어지고(아스팔트)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고 해야 알아들을 것이다. 바람에 넘실거리는 천(千)이랑, 만(萬)이랑 보리밭은 이제 웬만한 시골에서는 볼 수 없다.

어쩌다 보이는 밀밭이나 보리밭은 들 한 귀퉁이에 겨우 붙어 있을 뿐이다. 노랑 꾀꼬리 날아간 자취가 황금빛으로 길이 나는 것을 보자니 자연에 꾀꼬리가 없다. 그래도 신록으로 환하게 단장한 산봉우리는 어깨 들썩이며 마을 옆에 서 있다.
집으로 돌아오니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중간고사 끝내고 5월 초에 한 번 내려온다고 한다.

“내려오면 뭘 해 줄까?”
“집엔 방학 때나 갈 거야. 대구 할머니 댁에 내려간다고.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어서.”
이렇게 부모 자식 맘이 다르다.
“집 생각난다며 전화로 찔찔 짜거나, 주일마다 내려오면 어쩔 건데. 더 잘 됐지.”

 

사흘 낮 사흘 밤 봄비 젖어 내리더니 고샅길 따라 휘어진 무논에 파스텔톤 푸른 하늘이 깔렸다 그런데 솜방망이꽃 까치발하고 넘겨보는 저기 무슨 꿍꿍이가 있어 저리 환할까 무논 얕은 물 속에 서너 개 움푹 파인 황소 발자국 안 햇살 조밀조밀 아물아물 몰려 빛난다 / “파드득” 올챙이 한 마리 알껍질 뚫고 튀어나온다 하늘 한 자락이 술렁이고 낮달이 살풋 웃는다 // 저놈 애빌까 주먹만 한 두꺼비 한 마리 무심한 척 큰 눈 껌벅이며 지키고 앉아 있다 // “괜찮다 맨날 지게 지던 어깨라 그냥 걸으면 허전하구나” / 신작로까지 오리 길 한사코 당신이 지고 와서 버스 뒤쪽 뿌연 먼지 속 한 모롱이 돌아서고도 서 있던 아버지
拙詩 「고향의 봄」전문

 

내리사랑이라 했다. 어머니, 아버지 벌써 가신 지 오래지만 어머니, 아버지가 밑거름으로 썩어 내가 이렇게 땅 위에 뿌리 내리고 서 있고, 다시 내가 썩어 아이들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 아닐까. 신록으로 아양 가득한 산봉우리. 산에 들어서면 발목이 빠질 부엽토로 온 산 가득할 것이다.

문학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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