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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가있는마을] 집 이야기..
사회

[시가있는마을] 집 이야기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5/01 00:00 수정 2007.05.01 00:00

다음은 양성평등교육을 위한 설문지의 일부 내용이다.

가사는 여성의 몫이다=>아니오, 예(조금)
민원접수나 안내업무는 여자들이 더 적합하다=> (이구동성으로) 예
왜?”
남자가 안내하면 기분 나쁜데요.
다들 그리 말해 놓고 까르르 웃는다. 그 정도는 귀엽게 봐 줄 수 있다.
성폭력이나 강간은 대개 피해 여성의 행동이나 옷차림이 원인이다.=>아니오, 예(라고 답한 녀석들도 더러 있다.)
왜?
꼴리게 만들었으니까요...

한바탕 난리가 난다. 책상을 치고, 맞다며 추임새를 넣고, 그중에 순진한 녀석들도 실실거리며 웃는다. 이 대목에서 교사는 당황하면 안 된다. 아이들의 언어에 주눅이 들면 그때부터 비운의 교사가 될 수도 있다. 교사들의 특기인 일장연설은 아이들이 즐겨보는 영상자료에 비하면 턱없이 시시하지만 포기할 순 없다. 동물성과 인간성, 나아가 신성(神聖)에 대한 요약적 설명으로 내 입장을 마무리한다. 양성평등의 험난한 길이여!

 

태어날 때부터 여자들은/몸 안에 한 채의 궁전을 가지고 태어난다/그래서 따로이 지상의 집을 짓지 않는다/아시다시피 지상의 집을 짓는 것은 남자들이다/철근이나 시멘트나 돌을 등에 지고/한 생애를 피 흘리는/저 남자들의 집/집짓기, 바라보노라면/홀연 경건한 슬픔이 감도는/영원한 저 공사판의 사내들/때로 욕설과 소주병이 나뒹구는/싸움을 감내하며/그들은 분배를 위한 논리와/정당성을 만들기 위한 계략을 세우기도 하지만/우리가 사랑하는 남자들은/이내 철거되고야 말 가뭇한 막사 한 채를 위하여/피투성이 전쟁터에서 생애를 보낸다/일설에 의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태어난/여자들의 궁전으로 돌아와/자주 죽음을 감수하곤 한다고도 한다/역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고/그저 오묘할 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몸 안에/궁전을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의 種이 있나니…/그들이 박해를 받고/끝없는 외침에 시달리는 것도/생각해 보면 당연한 귀결인 것 같다

문정희, <집 이야기> 전문

 

몸 안의 집을 가진 여자와 그것이 없어 지상의 집을 짓기 위해 투쟁하는 남자들의 모습은 프로이드의 이론을 반박하는 듯하다. 남근을 가지지 못한 여자들의 콤플렉스가 집(子宮)을 가지지 못한 남성의 콤플렉스로 변모하였다.

나는 이론도 시(詩)도 다 떠나고 싶다. 세상의 집들이 오로지 남자의 집이거나 여자의 집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여자와 남자의 집, 혹은 너와 나의 집.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집이 축조되기를 바랄 뿐이다.

 

시인/ 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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