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없을 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림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죠.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신경쓰지 않아도 언제나 내 곁에 함께 서있는 것. 그게 바로 그림자예요. 내가 싫어서 밀어내려고 해도 밀어낼 수가 없는 그림자처럼 그림은 저희에겐 죽어서도 멀어질 수 없는 소중한 벗이랍니다”그림, 너는 내 운명그리매는 그림을 3년 이상 꾸준히 그린 사람들만 가입할 수 있다. 무슨 일이든 1년은 정신없이 지나가고 2년째는 계속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지나가고 3년째쯤 되면 정말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남아있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기준이다. 대부분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회원들은 하루일과가 끝나고 자투리 시간을 내서 그림을 그린다. 직장에서 일하고 또 그림을 그리면 피곤할 법도 하건만 모두들 붓을 들면 기운이 펄펄 솟는단다. 붓을 든 지 5년쯤 됐다는 노경희(42)씨는 아무 이유없이 그림그리는 것이 어릴 적부터 좋았단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시달리다가도 붓을 들면 금세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는 그녀는 요즘 돌에서 느껴지는 강한 힘이 좋아 돌만 찾으러 다닌다며 속삭인다. 김정숙(35) 총무는 그림그리는 열정에 반만 공부했다면 전교 1등은 문제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림 그릴 땐 너무 집중을 해서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집에 가서 잘 때까지 이 부분은 다르게 그릴 걸 하며 수정작업을 꿈에서도 해요” 그림은 보물찾기죠양산대학 평생교육원에서 그림수업을 듣던 회원들은 자기발전이 좀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수업을 듣던 사람들 중 13명이 모여 그리매를 만들었다. 그리매의 정신적 지주인 감민경(37)교수는 “동아리를 만들어 전시회를 목적으로 그림을 그리다보면 더 빨리 실력이 늘게 되요. 작업실에서 항상 보던 내 작품과 전시장에 걸려있는 내 작품은 공간적인 면에서 다르게 보이죠. 또 혼자 작업하면서 볼 때와 다른 사람과 함께 내 작품을 볼 때 또 달라보인답니다”라고 말한다. 혼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보고 ‘이 부분을 더 보강해야겠구나’라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작업을 하게 되면서 회원들은 작품실력 뿐만 아니라 안목까지 함께 높아지게 됐다.
회원들에게 무엇 때문에 그림에 그렇게 빠져사냐며 그림을 그리면 좋은 점을 말해달라고 하자 모두 입을 모아 ‘보물찾기’라고 외친다.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주위 사물에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평소에는 놓치고 지나치던 작은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고. 이렇게 아름다운 보물이 바로 곁에 있는데도 그냥 놓칠 뻔한 것을 그림을 그리면서 보게 됐으니 ‘보물찾기’가 따로 없다는 설명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한명숙(44) 씨는 그림을 그리는 또다른 이유는 바로 상상력이 풍부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눈을 감고 빈도화지에 무엇을 그릴 건지 상상을 하라고 해요. 그러면 아이들은 하늘로 바다 속으로 상상여행을 떠나죠. 그다음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어떻게 그릴지 배치를 하고 눈을 뜨죠. 그림 속에선 아무런 제약이 없어요”그림 이야기를 하면 하룻밤을 새고도 할 얘기가 남는다며 웃음꽃을 피우는 회원들. 지난 20일 문화예술회관에서 4번째 정기전시회를 가지기도 한 이들은 비록 아마추어지만 마음만은 프로못지 않다고 자부한다. 그림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 그림자처럼 평생 그림과 떨어지지 않겠다고 손가락을 걸며 약속을 하는 이들은 진정 그림쟁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