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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당신의 딸로 태어나 행복합니다”..
사회

“당신의 딸로 태어나 행복합니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5/08 00:00 수정 2007.05.08 00:00
어버이날 특집

우여곡재에 철쭉꽃이 만발하고 뒤뜰에 설유화가 장독대를 뒤덮던 이맘때, 태동이 사내아이 같아 내심 아들을 기대하며 절 낳으셨다죠.

그런데 세 번째도 딸이라서 아버지보다 어머니께서 더 실망하셨다지요. 시어른들께 죄송해서 기저귀도 밖에 못 내다 말리셨다면서요?. 다 커서 우연히 그 얘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답니다. 섭섭해서가 아니라 어머니께 너무 미안해서였습니다.

‘아들로 태어나 드릴 걸’  크면서도 유난히 병치레가 잦아 어른들께 더 민망하셨다지요.  지금이야 아들딸 구분 없이 키우지만 그 때만 해도 종씨끼리만 모여 살아가던 우리 동네에선 아들이 여자들의 자부심이고 며느리의 의무가 되었기에 어머니는 아들을 고대하신거란 걸 어린 그 때도 어렴풋이 알았답니다.

그 후 늦게나마 남동생이 태어났을 때 아들로 태어나지 못한 미안함을 갚아보기라도 할 양으로 한달음에 할아버지께 달려가서 엄마가 아들을 낳았다고 말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동생은 소중한 존재였기에 엄마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여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생이 달라면 아무리 소중한 것도 내어 주었지요. 아깝지 않았던 걸 보니 일찍 철이 들었나 봅니다.

안쓰러운 막내 딸 위해 추억과 그리움을 많이 유지하게 해주신 어머니. 치마꼬리를 잡고 남새밭이며 새참 길 따라 나서면 보이는 것마다 일일이 설명 해주신 덕에 그 시절 전과도 없이 학교 숙제를 해가곤 했죠. 동화책이 많이 없던 시골에서 책 대신 들려주신 구전동화가 지금 글을 쓰는 밑거름이 되게 해줍니다.

아침연속극을 보다 뜬금없이 전화를 하여 “옛날에 외할아버지께서 장에 갔다 오시던 추억담 기억하세요? 여우에 홀려서 새벽 닭 울음소리에 칠흙 같던 어둠이 걷히고 길이 보여 간신히 집에 살아 돌아 오셨다던 얘기 있잖아요...”하면, 별걸 다 기억한다며  전화요금 걱정부터 하십니다.

귀한 남동생 때문에 늘 주눅이 들었다고 여기신 어머니는 아무도 몰래  도시락 주머니 안에  밥 위에서 삶은 계란 한 개를 꼭 넣어 주셨지요. 병아리 낼려고 아버지께서 모아두시는 계란이었잖아요. 그 사랑이 전해졌는지 또래들 보다 키가 한 뼘은 더 컸답니다.  병치레도 덜하고 운동회 때마다 릴레이 선수를 하기도 했지요. 상품으로 받아 온 몇 권의 공책은 엄마의 자랑이었던 생각이 납니다.

지금 아파트 옆 초등학교에서는 봄 운동회를 한다고 시끌벅적한 재잘거림이 여기까지 들려옵니다. 일 년에 딱 한 번 학교에 오시는 날이 가을 운동회 하는 날이었어요.

부지깽이도 거든다던 바쁜  추수철에 하루를 빚내다시피 하여 헤진 옷이 아닌 깨끗한 차림으로 오신 엄마는 가을 하늘보다 더 좋았습니다. 달리기가 더 잘됐습니다. 딸이 1등하는 모습 꼭 보여 드리고 싶어서 더 열심히 달렸답니다. 아들이 아니어도 기쁨을 드릴 수 있어서 행복했었지요. 딸로 태어난 게 덜 미안했던 날이 운동회 하는 날이었습니다.

오늘은 큰애가 대학에 간지 두 달 만에 처음 집에 오는 날입니다. 음력 3월 20일, 어머니께서 저를 낳으신 날이라고 내려온다 하네요. 이렇게 세상에 있게 해주시고 딸로 낳아주셨기에 소중한 우리 애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 답답할 때만 어머니를 찾는 막내딸, 효도도 못하면서 곁에 오래오래 계셔 주시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막내딸, 대학 간 아들 보러 간 김에 어머니 뵙고 오는 얄궂은 막내딸이지만 “소저씨~ 막내딸 왔어요”하고  대문에 들어서면 무릎관절 언제 아팠느냐 듯 뛰어 나오시는 어머니. 웃는 모습이 귀엽고 천진한 내 어머니.

돗나물이며 어린 돌미나리 좋아하는 막내딸 위해 혹시나 으깨질까 봉지봉지 담아 차에 올려 주시며 나눠 먹으라는 손톱 밑이 까만 내 어머니.  차가 출발하려면 눈시울 젖으시는 걸 다 아는데 감추시려 눈을 마주치지 않으시고 어서 가라 손 저으시는 어머니.
어머니!
생일날이라고 미리부터 챙겨주는 가족과 친구가 저에게는 많습니다. 낳아주셔서 행복한 날입니다. 곧 다가오는 어머니 생신에는 어머니 귀한 큰아들이 집들이를 한다 하네요. 기특하고 대견합니다. 그 때 가서 뵐게요. 버릇없는 말투지만  “소저씨~ 막내딸 왔어요” 하면 더 즐거워하시잖아요. 오래도록 그렇게 부를 수 있게 해주세요.
사.랑.합.니.다.  어머니.  
 -막내딸 올림-

 

삽량문학회 편집국장 성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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