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래. 아들, 딸 내게 과분하지. 당신도 내게 넘치게 좋은 사람이지. 돈 조금 모자란 것 말고 모자란 것 없잖아. 이 삶이 내게 과분한 축연이지” 한다. 산다는 게 무얼까?
김남조 시인은 「설일」에서 “삶은 언제나 /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 사랑도 매양 /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라고 하면서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 한 세상을 누리자”고 했다. 시인이 생각하는 삶이란 ‘축하 잔치를 누리는 것’이라는 말이다.저렇게 많은 중에서 /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 밤이 깊을수록 /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 이렇게 정다운 / 너 하나 나 하나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 다시 만나랴.
김광섭의 「저녁에」전문 수많은 사람 중에서 너와 내가 만나 사랑으로 맺은 것은 우연이지만 그 우연은 운명적 우연이다. 만남과 사랑이 ‘우연’처럼 왔으니 헤어짐 또한 ‘우연’처럼 찾아 올 것이다.지난 금요일, 토요일 양일간 학교 축제를 했다. 우리 반 관악부 학생 어머니가 연주를 듣고 난 다음,
“Y 때문에 죽겠어요. 중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말 잘 들었는데 고등학교 들어온 후부터 말을 듣지 않아요” 한다. “좀 늦었지만 이제 사춘기가 되었나 보죠”
아들이지만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집에 오면 이야기도 잘 하고 부모 말에 대꾸하는 일 없었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한 다음, 특히 관악부에 들어간 뒤로 말을 듣지 않더니 말없이 외박까지 두 번 했다는 것이다. 관악부 탓을 30분 정도 계속했다. “아들을 사람으로 키우고 싶으세요? 아님 애완동물로 키우고 싶으세요?”
“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부모 말을 너무 잘 듣기만 한다면 그게 오히려 더 문제라고 했다. 그리고 학생에게 공부가 가장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공부에만 목매달지 말라고 했다. 부모가 병으로,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진정으로 그 슬픔을 오래 담고 있는 고등학생들이 요즘 잘 없다. 부모의 죽음을 해방으로 느끼는 경우도 있어 보인다. 오늘 이렇게 와서 네가 친구들과 연주하는 것 감동으로 들었다고 하면서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아들을 잃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한 10여 분 했던 것 같다.
우리 만남을 복된 만남으로, 우리 삶을 축제로 만들자면 가슴을 열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축제의 달 오월이다.시인 / 문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