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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가있는마을] 인연설화조..
사회

[시가있는마을] 인연설화조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6/04 00:00 수정 2007.06.04 00:00

금아(琴兒) 선생께서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인터넷으로 읽는다. 오늘 아침 뉴스에는 선생의 영정 앞에 수필집 <인연>을 놓았다고 한다. 나도 한때는 <인연>의 애독자였다. 늘 옆에 두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었었다. 그 책을 학교 생활에 염증을 느끼는 조숙한 여학생에게 주고 난 뒤로는 다시 펼칠 기회가 없었지만, 덕분에 그 여학생의 마음을 붙잡을 수는 있었다.
오늘 아침, 다시 선생의 <인연>을 읽는다.

아사코는 '스위트피이'를 따다가 꽃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 주었다. '스위트피이'는 아사코같이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아사코는 어느덧 청순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영양(令孃)이 되어 있었다. 그 집 마당에 피어 있는 목련꽃과 같이.
그 집에 들어서자 마주친 것은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아사코의 얼굴이었다.
피천득, <인연> 중에서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는 아사코의 모습과  두 사람의 거리가 애달프다. 선생과 아사코는 버지니아 울프의 <세월>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가? 선생은 마지막에 말한다. “그리워하는 데도?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고. 인연이란 참 모질고 서러운 것이다.

언제든가 나는 한 송이의 모란꽃으로 피어 있었다./한 예쁜 처녀가 옆에서 나와 마주보고 살았다.//그 뒤 어느 날/모란꽃잎은 떨어져 누워/메말라서 재가 되었다가/곧 흙하고 한 세상이 되었다./그게 이내 처녀도 죽어서/그 언저리의 흙 속에 묻혔다./그것이 또 억수의 비가 와서/모란꽃이 사위어 된 흙 위의 재들을/강물로 쓸고 내려가던 때,/땅 속에 괴어 있던 처녀의 피도 따라서/강으로 흘렀다./그래, 그 모란꽃 사윈 재가 강물에서/어느 물고기의 배로 들어가/그 血肉에 자리했을 때,/처녀의 피가 흘러가서 된 물살은/그 고기 가까이서 출렁이게 되고,/그 고기를, ――그 좋아서 뛰던 고기를/어느 하늘가의 물새가 와 채어 먹은 뒤엔/처녀도 이내 햇볕을 따라 하늘로 날아올라서/그 새의 날개 곁을 스쳐 다니는 구름이 되었다.//그러나 그 새는 그 뒤 또 어느 날 사냥꾼이 쏜 화살에 맞아서,/구름이 아무리 하늘에 머물게 할래야/머물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기에/어쩔 수 없이 구름은 또 소나기 마음을 내 소나기로 쏟아져서/그 죽은 샐 사간 집 뜰에 퍼부었다./그랬더니, 그 집 두 양주가 그 새고길 저녁상에서 먹어 소화하고/이어 한 영아를 낳아 양육하고 있기에,/뜰에 내린 소나기도거기 묻힌 모란 씨를 불리어 움트게 하고/그 꽃대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그래 이 마당에 現生의 모란꽃이 제일 좋게 핀 날,/처녀와 모란꽃은 또 한 번 마주 보고 있다만,/허나 벌써 처녀는 모란꽃 속에 있고/前날의 모란꽃이 내가 되어 보고 있는 것이다.//
피천득, <인연> 중에서

내가 마주한 모란 하나가 아득한 옛날 나였음을. 석가의 한 소식을 오늘 듣는다.

작/ 배정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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