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1997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아 IMF체제에 들어간 직후 국내 중ㆍ소기업들은 파도에 휩쓸리듯 우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고 했지만 속담이 무색하게 기업인들이 공들여 가꿔놓은 탑이 무너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영진전기조명마트 정진호(50) 대표도 10년 전 IMF의 높은 파고를 이기지 못하고 젊음을 바쳐 10년간 꾸려온 영진전기(부산 범일동)가 부도를 맞고 말았다. "당시 너도나도 부도가 났습니다. 누군들 부도가 나고 싶어서 났겠습니까. 막으려고 해고 막을 수가 없었죠. 부도가 연쇄적으로 나니까 어쩔 수가 없는 거죠. 개인 사업가로서는 불가항력적인 시기였습니다. 대한민국 자체가 부도였으니..."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다. 미쳐 손써볼 틈도 없었다. 정 대표는 당시 상황을 '나라가 우리를 망하게 했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정 대표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삶터는 고향인 부산을 떠나 웅상으로 옮겨졌지만 영진전기조명마트를 차리고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한 것이다. "부도가 나면 '죽고 싶다'는 사람, '사업을 끝내야 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열심히 뛰어보자'라고 생각했죠. 부도가 난 뒤에 술, 담배도 다 끊었습니다. 그러니까 전보다 사업 규모가 더 커지더군요" 값비싼 수험료의 대가"모든 것을 잃고 나서 오히려 배운 것이 많습니다. 한 번 아픔을 겪고 다 잃어보니까 '어떻게 하면 잃지 않겠구나'하는 노하우가 생기더군요. 그것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정 대표는 '잃지 않는 법'을 알기위해 값비싼 수험료를 치렀다. 당시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수험료를 많이 지불하니까 좋은 것이 생기더라'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여유를 되찾았다. "역시 수험료를 많이 내니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더군요. 일부러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자의든 타의든 큰일을 겪고 나니까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정 대표는 값비싼 수험료를 치르고 얻은 소중한 경험을 은유적으로 설명했다. "사람이 일주일을 굶으면 배가 아프죠. 어떻게 아픈지는 의사도 모릅니다. 그 아픔은 책으로 공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실제로 겪어봐야만 그 아픔을 알 수 있습니다. 부도도 마찬가집니다. 흔한 말로 '돈을 떼였다'라고 하는데 단지 말로 '떼였구나'라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내 돈이 떼인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당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죠. 또 고통과 함께 교훈도 얻을 수 있는 것이고요" '외상사절'의 의미부도를 겪으면서 정 대표가 느낀 것이 바로 '외상사절'이다. '싸게는 주되 외상은 주지 말자'가 철칙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외상사절-주인백'이라고 써진 액자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그런데 왜 하필 '외상사절'일까? "10년 전에는 무조건 외상이었습니다.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갔다가 돈이 되면 주고 하는 식이었죠. 내 손에 돈이 안 들어 왔는데 돈이 있는 양 장사를 벌인 거죠. 그러니까 부도가 안날 수가 없는 구조죠.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태풍이 온다고 하더라도 집이 튼튼하면 걱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집이 허술하면 문제가 심각해지죠. 태풍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허술하게 집을 지은 자신을 반성해야 하는 겁니다"즉, 정 대표가 말하는 '외상사절'은 '내실을 다지자'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라가 망해도 나는 안 망하는 방법'. 그 방법이 바로 정 대표가 값비싼 수험료를 내고 얻은 '외상사절'이라는 단어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성실하면 두렵지 않다정 대표가 장사를 하면서 느낀 것 가운데 또 하나는 '잘사는 사람은 성실하다'는 것이다. '게으른 사람만이 세상을 두려워하고, 열심히 일하면 겁나는 것이 없다'라는 것이 정 대표의 철학이다. "게으른 사람이 탈도 많고 말도 많은 법입니다. 어떤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열심히만 하면 다 헤쳐 나갈 수 있거든요. 남보다 신발이 많이 닳아야 합니다. '남과 같이 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우선 자신을 돌아볼 일이지 남에게 물어 볼 일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인지 정 대표는 평생을 살면서 네 시간 이상 잠을 자 본적이 없다고 한다. 정 대표는 '신뢰'를 장사의 또 하나의 덕목으로 꼽았다. '신뢰는 곧 내일에 통할 장사'라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과거와 달리 국민들이 정치를 다 알아 버렸지 않습니까. 장사도 정치와 마찬가집니다. 이제 말 몇 마디로 속이면서 장사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100원짜리 물건을 손님이 잘 모른다고 해서 200원을 받으면 오늘은 통해도 내일은 통하지 않습니다"그러면서 정 대표는 앞으로 장사의 '정도'를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어기면서 가는 것은 얼마 못 가죠. 비록 더디게 가더라도 세금 낼 것은 다 내고 할 것은 다하고 가야 합니다. 편법으로 크게 돈을 벌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내놔야 할 날이 옵니다. 그때그때 넘어가는 것은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은 것이죠.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래성 말이죠. 과거에는 통했을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생의 정도를 걷고 싶다정 대표는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우연한 기회에 전기 계통 일에 뛰어들어 어려움도 겪었지만 운도 좋았다고 했다. 많이 배우지도 않았고 특별한 재주가 있었던 것도 아닌, 단지 먹고살기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얻은 첫 직장이 전기 계통 일이었고 다행히 적성에도 맞았다고 한다. 그러다 20년 전 자신의 가게를 차렸다가 10년 전 부도를 맞았다. 모든 것이 잃어 버린 시기,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이를 악물고 버텼고 '양산에는 공장이 많아 막연히 전기 관련 제품이 잘 팔릴 것'이라는 생각으로 또다시 웅상으로 옮겨 자리를 잡기까지 10년. '전기'라는 한 우물을 판지 30년인 정 대표의 바람은 의외로 소박하다.
"거창하게 내세울 것도 없지만 이제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제 일을 하면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정도를 걸으면서 사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평범하고 소박한 정 대표의 바람이 장사를 시작하는 후배들의 가슴에 남을 큰 메아리로 울려 퍼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