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4년. 그 후로 매일 부모님의 산소로 발길을 돌리는 하북면 지산리의 최원봉 할아버지(95)를 만났다.“아버지는 34년전 어머니는 28년전, 아내는 13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나 보냈지”
2남 1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환갑을 넘길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후 하루 세끼 제를 지내고 그때부터 습관처럼 산에 가게 되었다는 최원봉 할아버지.하루 세 번이나 산소에 가냐는 기자의 말에 “하루 세 번 밖에 못간다”며 웃음을 지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아버지가 산소에 자주 오셨지. 아버지께서는 살아 생전 겉으로 표현은 안하셨지만 늘 자식들 생각을 먼저하고 고생 하면서 사셨지”울산시 삼남면에서 태어나 6.25때 집을 불태우고 가족들이 모두 이 곳으로 왔다는 할아버지는 “그 당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낼 수가 없어서 셋방 하나를 얻어 부모님과 아내, 자식들과 한방에서 지냈을 때가 생각난다”며 잠시 지난날의 회상에 잠겼다.생일상을 받을 때도, 예식을 치를 때도 늘 조상에게 제를 먼저 올리고 절을 받으시는 할아버지는 “무엇보다 조상에게 잘해야 나도 잘되고 자식들도 잘된다”며 예의범절의 중요함을 당부했다.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부모님도 동갑내기, 나도 아내와 동갑, 큰아들과 작은 딸 내외 모두 동갑내기 부부다” 며 “신기하게도 우리 집안은 동갑내기 부부의 연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늘 부모님이 계신다고 생각하며 산소에 오른다는 할아버지.
걸어서 25분, 왕복 45분이나 되는 거리를 고무신 한 켤레 신고 산으로 향하는 할아버지에게 올해는 지팡이가 하나 생겼다.딸 최용금(68)씨는 “아버지가 100세를 바라보는 연세에 매일 산을 오르시니 건강이 염려돼 가족들이 못가게 말리기도 하지만 소용이 없다” 며 “아침에 눈뜨자마자 산소에 가서 풀도 뽑고 밭에 나물도 키우고 산소를 점검하는 일이 아버지의 일과가 됐고, 또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일이기에 자녀들도 그 뜻을 받아들인다”고 말했다.그래서인지 부모님과 아내의 묘, 6대조의 묘가 함께 있는 지산리 갈밭등 한쪽 옆에는 할아버지가 잠시 쉬었다 머무르는 작은 컨테이너 박스가 눈에 띄었다. 효심이 지극해 20여년 전 효자상을 받기도 한 할아버지는 산을 한바퀴 두르고 오면 마음이 가뿐하다고 말했다.이어 부모님의 은혜를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하신다.
“부모는 말 그대로 부모이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