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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가있는마을] 시란 무엇일까..
사회

[시가있는마을] 시란 무엇일까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6/12 00:00 수정 2007.06.12 00:00

윤동주의 서시(序詩). 어느 조사에서 우리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 1위에 올랐던 적이 있는 시다. 하지만 서시는 시인마다 다 쓴 적이 있다고 할 만큼 많은 시인들이 쓰고 있는 시이다. 그 시집에 있어서 ‘시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이 들어 있는 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를 쓰면서 가르치고 있는 내게 있어 시란 무엇일까?

시는 살아 있는 낯선 것을 잡아챈 기록이다. 생선가게에서 죽은 생선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계류(溪流) 속에서 몸 뒤채는 놈, 폭포수 거슬러 요동쳐 오르는 놈, 대양을 유유히 헤엄쳐 가는 바로 그놈들을 잡아챌 때의 퍼들거림을 기록한 것이다. 시는 막 눈 뜬 새끼 강아지를 두 손바닥으로 감싸 안았을 때의 따뜻함과 녀석이 낯설어 바르르 떨며 발톱 감추는 울림이다.

 선친 제사 끝나고 제삿밥 먹고 새로 두 점을 칠 때 내일 출근해야 한다며 차에 오르는 셋째, 자고 새벽에라도 가라하는데 내일 수업 때문에 안 된다며 일어서는 것 잡지 못해 팔순 넘기면서부터 기력이 쇠해 거동 불편한 어머니, 주춤주춤 차 앞까지 걸어와, 간신히 걸어와, 당신보다 벌써 더 자란 손자 손녀 손에 쌈짓돈 용돈이라며 쥐어주는 이제 다 늙은 손의 [떨림이다. 조심해서 가라며 형님, 형수, 조카들 다 들어가는데도 현관 앞에 서서 차 꽁무니 바라보는 떨림이다.(졸시 「시, 낯섦, 떨림」에서)

살아야겠다. 기필코 / 저승에서 목매달고 죽어서라도, / 아직은 남은 꿈이 굴뚝새 나는 밤물결 같고 / 들머리 지나는 뜬구름의 그림자 같애. // 속이 영 거북하고 / 초저녁 잠 같은 저승의 발길, / 난 안 들었어. 난 아니 들었어. / 이대로 밑도 끝도 없이 나둥그라지다니. // 그것은 절대로 아니 될 말씀. 한세상 오금 펴고 꽃길을 저어 가야지. / 노젓는 사공 없으면 아무렴 어때. // 개코 같은 말씀인지 딴은 몰라도 / 이 터수에 거짓말할까. / 한없는 목숨의 끝이 있어서 / 모르면 몰라도 하늘자락 한 끝은 보여 주겠지. // 기필고 한 주먹만 더 살아야겠다.
박정만의 「기필코 한 주먹만」전문

서른여섯 살에 한수산 필화 사건에 연루되어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죽는 날까지 시달리다 마흔두 살에 죽은 시인 박정만. 시인은 하늘자락 한 끝을 보려고 기필코 한 주먹만 더 살아야겠다고 했다. 박정만 시인에게 시는 구원으로 통하는 길이었다.

1 / 변두리 허름한 헌책방 / 먼지를 푹 뒤집어 쓴 / 시집 한권 툭툭 털며 읽는다 / 여성지와 중학교 문제집 사이에 꽂혀 있는 / 시인 박정만 / <그대에게 가는 길> 유고 시집 / 기필고 한 주먹만 더 살아야겠다던 / 시인의 시집 / 靈肉을 짜내 쓴 시인의 피울음이 / 곰팡이로 앉아 있는 시집 속 / 시인의 눈은 눈물겹게도 /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 헌책방 나와 낮술 마시며 / 시인이 응시하던 하늘을 보았다 / 타다 남은 연탄 같은 여름 해 아래 / 질식할 것 같은 어떤 삶의 원형을 // 2 / 죽음이란 결국 무엇인가 / 밀려 떨어지는 톱밥처럼 우울하게 / 이 땅에서 시인의 죽음은 / 정육점 쇠꼬챙이에 걸린 / 고기 덩어리 같은 / 아아, 시의 살과 피 // 3 / 짙은, 먹빛으로, 빠르게, 번지는, 구름떼 / 불현듯, 쏟아지는 / 장대비(아아, 저 쇠창살, 쇠창살)
박성민의 「어느 시인의 죽음」전문

「기필코 한 주먹만」을 자신의 색깔 있는 목소리로 읽어 신춘문예 문을 열었던 시다. 시인의 죽음을 정육점 쇠꼬챙이에 걸린 고기덩어리로, 시인을 고문하여 후유증 속에서 파괴하여 마침내 죽음으로 몰고 간 사회를 쇠창살로 쏟아져 내리는 장대비로 읽고 있다.
  나는 내 ‘서시’에서 말했듯 살아 퍼들거리는 생생한 떨림으로 몇 살이면 삶을 읽어낼 것인가.

시인 / 문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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