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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이제 잊힐 기억들을 위하여.....
사회

이제 잊힐 기억들을 위하여...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6/19 00:00 수정 2007.06.19 00:00
시외버스터미널 마지막 날을 가다

이제는 비를 피해가던 장소도, 친구를 기다리던 의자도,
옷 매무새를 가다듬던 사각 거울도 기억의 흐름속에 머문다이마에 땀이 송글 맺히는 여름 날씨다. 한 손에는 부채를 들고 터미널 내 의자에 앉아 주름이 깊이 패일새라 웃음 지으며 이런 저런 안부를 주고받는 어르신들은 오랜만에 재회를 한 모양이다. 익숙한 것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었을까?그냥 무심코 늘 지나쳤던 곳이지만 오늘따라 한평 남짓 한 담배 가게의 자리가 커 보인다. 아, 저기에 담배 가게가 있었더랬지..

1991년. 2층에는 병원이, 지하에는 만화방이 자리 잡았던 이곳은 어느새 세월의 풍파 속에 거칠어진 어르신들의 손처럼 낡고 퇴색되었지만 길 가던 나그네가 잠시 쉬어갈 수 있던 우리네 삶의 한 부분이었다.만남의 장소로 헤어짐의 장소로, 매일 2천여 명의 시민들의 발길이 오가는 그곳에 잠시 멈춰 섰다

따가운 햇살을 가리며 들어오는 반가운 버스들, 각자 원하는 장소로 발길을 돌려 홈을 메우는 사람들,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내리는 상인들, 한 손에는 시장바구니를 다른 한 손에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버스를 기다리는 아낙네들, 걸쭉하게 소주 한잔 걸치고 막차를 놓칠 새라 한걸음에 달려 온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지긋 지긋한 관절염으로 좁은 난관에 엉덩이를 걸터앉은 할머니들의 정다운 모습을 보니 터미널은 단순히 버스 정류장이 아니었던가 보다. 바로 그 속에 삶이 있고 인생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재잘거리며 거울에 모여 옷매무새를 다듬는 여고생들의 웃음소리도, 비둘기에게 라면 부스러기를 주던 한 중년도, 아버지의 품에 안겨 버스 창문 너머로 손 인사를 하던 딸아이도 이젠 기억 속으로, 추억 속으로 남겨야 할 때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한창 활기를 띄던 젊은 세월 속에서 낡고 부서진 천장의 깜빡이는 형광등, 매표소 옆 녹이 쓴 물품보관대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익숙한 것에 대한 무관심이 이제는 그리움으로 남는다. 시민들의 만남의 광장이었던 터미널, 이제는 문이 닫혀 버렸지만 다음 세대는 알지 못할 우리들만의 기억들을 색이 바랜 책갈피 속에 고이 접어둔다.

글_ 허귀선 기자 / sun@ 
사진_ 진보현 기자 / hyun00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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