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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특별기고] 소설「남한산성」과 언론..
사회

[특별기고] 소설「남한산성」과 언론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6/19 00:00 수정 2007.06.19 00:00

말과 글로 사는 사람에겐 말과 글에 대한 두 가지 모순된 감정이 있다. 하나는 말과 글에 대한 믿음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한다, 내지는 붓이 칼보다 강하다는 신념 같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말과 글의 무서움이다. 세상에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이미 쓴 글은 누군가가 본다는 두려움이다. 그러니 말과 글의 힘을 느낄수록 말과 글은 조심스러운 것이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은 바로 그 말과 글의 힘과 무서움을 두루 느끼게 해 준 역작이다. 김훈은 글을 기가 막히게 쓰는 작가다. 그의 문체는 무협지의 화려함과 르포의 건조함이 묘하게 균형을 잡고 있다. 그가 다루는 내용도 『칼의 노래』나『현의 노래』 등의 전작에서 보듯 무겁고 깊다. 『남한산성』에선 그의 글쓰기가 더욱 담담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시대에 이런 고수 작가와 함께 산다는 것 자체가 한 즐거움이다.  

 소설의 내용은 조선 인조 임금이 청나라의 침입으로 남한산성에 갇혀 있던 한 달 여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절박하고 참담한 상황을 아주 담담하고 드라이하게 기술하고 있다. 죽더라도 싸우다가 죽자는 주전론자들과 우선 살고 후일을 도모하자는 주화론자들 사이의 논쟁을 보는 임금의 부득이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건조하게 기술하고 있다.

살기 위해 청나라 군영에 부역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의 모습이나, 그나마 산성이라도 지키자고 한 겨울 밤 몸을 떨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도 그냥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있다.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는 작가로서 임금이 용렬하다든가, 주전론자들이 철없다든가, 허구한 날 대륙만 쳐다보던 관리들이 정작 국제정세의 변화에는 어찌 그리 아둔할 수 있는지 등등 정말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쾅쾅 쳐 가며 얼마든지 난도질 할 수 있음에도 시종 감정 없이 나레이션을 하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작가의 감정 없음이 독자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키워주는 셈이다. 작가는 산성 밖에 있는 칼 가진 외적 보다 오히려 산성 안의 말과 글로 싸우는 사람들이 더 힘들다는 압축적인 표현으로 자신의 심정을 정리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친절하지 않은 작가 덕에 이 소설은 참 여러 가지의 코드를 갖고 읽을 수 있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기자실 통폐합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른바 정부의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의 아쉬움을 말하고자 한다. 국정홍보처는 언론의 잘못된 취재 관행을 고친다는 취지로 정부 부처의 기자실을 통폐합하는 방안을 5월 22일 확정 발표했다. 사실 정부가 주장하는 취재의 선진화라는 명분은 옳다.

하지만 취재 환경 개선이라는 것은 결국 권력 견제와 알 권리 보장이라는 언론 본연의 목표를 더 잘 달성할 수 있게끔 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취재 방안은 이 본연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려될 뿐이다. 그런데 이 방안에는 정보 공개나 정부의 브리핑 내실화 등 사전에 다져져야 할 조치들이 선행되지 않았다.

게다가 충분한 의견 수렴이라는 절차적 정당성도 결여되었다. 당연히 기자들 뿐 아니라 언론의 역할을 중시하는 국민들은 우려하고 반대한다.
이 방안이 특정 보수 언론을 미워하는 대통령의 의중이라는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일부 신중론을 무시하고 밀어부친 누구누구가 과잉충성하고 있다는 얘기도 안 하고 싶다. 어떤 의도든 누가 했든 내용이 당위적이면 된다. 그런데 허울 뿐 명분과 실용 모두 부족하다면 보완하거나 아예 재고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소설 『남한산성』의 한 장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갇혀있는 임금은 매일같이 반복되는 신료들의 화전(和戰) 논쟁에 지쳐있다. 그런 상황에 설상가상 젊은 간관들은 낮밤으로 처소 앞에서 언론을 펴고 있다. 임금이 피곤해 하자 영의정이 ‘저들을 물러나게 할까요’하고 묻는다. 임금은 ‘바른 말 하는 것은 저들의 일인 것을’하며 내버려두라고 답한다.

물론 언론도 달라져야 한다. 무례하게 군림하는 듯 하는 취재 관행도 고쳐져야 한다. 하지만 언론 스스로 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상책이다. 그건 ‘저들의 일이니까’. 정 고쳐지지 않으면 독자들이 손을 볼 것이다. 굳이 갈 길 바쁜 정부가 나설 일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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