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용 시인을 만나러 가는 길. 나는 지하철에서 K가 구해온 그의 시집을 읽었다. 인터넷에서 그의 시들을 여럿 읽었지만, 그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시집을 일별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시집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를 만나면 어떻게 경의를 표해야 할까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지게꾼 시인’으로 불리는 그의 이력을 나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시집 <개 같은 날들의 기록>에 실렸던 시를 읽으면 그의 삶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내 짐작은 삶의 사막을 맨발로 걸어온 그 앞에서 얼마나 추상적인가? 자신의 세계를 순정하고 공고하게 구축해 온 사람 앞에서는 기꺼이 모자를 벗어야 한다. 영광도서에 들러 그의 시집을 찾으니 <개 같은 날들의 기록>과 <도장골 시편> 두 권이 남았다 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시집을 사 보기도 오랜만이다. 시인은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의 삶과는 무관하게 피부가 맑았다. 작살주에 속이 작살이 나서 맥주를 마신다는 그의 옆자리에 앉는 행운을 얻어 말씀을 경청하였다. ‘절망이 기교를 낳는다’는 말을 사치로 만들어버린 그의 이력. ‘절망이 절망을 낳는’ 삶에서 결코 시를 놓지 않은 그는 거인처럼 보였다. 여기 인용하는 시는 민달팽이의 알몸으로 뜨거운 햇빛 속을 걸어온 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치워라, 그늘!> 햇빛을 정면으로 쏘아보는 그의 통쾌한 일갈, 그러나 나는 슬펐다. 냇가의 돌 위를/민달팽이가 기어간다/등에 짊어진 집도 없는 저것/보호색을 띤, 갑각의 패각 한 채 없는 저것/타액 같은, 미끌미끌한 분비물로 전신을 감싸고/알몸으로 느릿느릿 기어간다/햇살의 새끼손가락만 닿아도 말라 바스라질 것 같은/부드럽고 연한 피부, 무방비로 열어놓고/산책이라도 즐기고 있는 것인지/냇가의 돌침대 위에서 午睡라도 즐기고 싶은 것인지/걸으면서도 잠든 것 같은 보폭으로 느릿느릿 걸어간다/꼭 술통 속을 빠져나온 디오게네스처럼/물과 구름의 運行 따라 걷는 운수납행처럼/등에 짊어진 집, 세상에게 던져주고/입어도 벗은 것 같은 衲衣 하나로 떠도는/그 우주율의 발걸음으로 느리게 느리게 걸어간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아내가 냇물에 씻고 있는 배추 잎사귀 하나를 알몸 위에 덮어주자/민달팽이는 잠시 멈칫거리다가, 귀찮은 듯 얼른 잎사귀/덮개를 빠져나가버린다.
치워라, 그늘!
― 김신용,「민달팽이」전문예술을 빙자하여 세상을 속이는 허접한 장사치들에게 그의 목소리를 빌어 말하고 싶다. 치워라, 수작!작 / 배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