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초라한 마을 수호신의 오늘
평산리 느티나무..
사회

초라한 마을 수호신의 오늘
평산리 느티나무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7/16 00:00 수정 2007.07.16 00:00

마을마다 사연을 가진 나무들이 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이 땅을 지켜온 큰 나무들. 지난해 지역신문발전기금 저술사업을 통해 양산 곳곳에 우리 삶을 지켜온 큰 나무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책으로 엮어보았습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온 큰 나무들의 새 의미를 2007년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할 양산시민들과 함께 다시금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지면을 통해 나누려고 합니다.

   

14. 평산리 느티나무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시절, 마을 주민들의 생활터전이자 편안한 안식처였던 옛 아리골인 평산마을의 한 골짜기. 이곳에는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이 마을을 수호하는 신이라 생각하는 당산나무가 있었다. 하지만 추정 수령이 330여년에 이르는 이 당산나무의 현재 모습은 ‘마을의 수호신’이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초라하기 그지없다. 양산시가 나무 주변으로 아파트 건립계획을 승인하면서 아파트 사이에 갇혀버렸기 때문이다.
특별취재팀

마을을 지키는 수호나무

현재 웅상읍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평산 리(平山理). 평산리의 서쪽에 있는 야트막한 골짜기는 예로부터 아리(阿理)골이라고 불렸으며, 아리사(阿理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아리마을은 당산나무의 노여움을 산 것일까? 이 지역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 시대를 알 수 없지만 마을에 화재가 발생해 마을이 불타 없어지고 그 후에 평산마을이 형성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1828년에 웅촌면 아리(熊村面 阿理)였다가 1867년 웅촌면 아리 개 평산리(熊村面 阿理 改 平山理)로 개명됐다는 내용으로 봤을 때, 아리마을을 집어삼킨 화마(火魔)는 1828년과 1867년 사이에 발생한 것이 아닌가라고 추정된다.    

 

   
초라한 모습의 수호신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시절, 마을 주민들의 생활터전이자 편안한 안식처였던 옛 아리골인 평산마을의 한 골짜기.이곳에는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이 마을을 수호하는 신(神)이라 생각해 해마다 정월 보름이면 마을을 지키고 보호해 달라는 제를 올리는 당산나무가 있다.

둘레 3.6m, 높이가 무려 20m에 이르는 위풍당당한 풍채를 자랑하는 느티나무인 이 당산나무는 사방으로 가지를 뻗어 멀리서 보면 언덕에서 불쑥 솟아올라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마을의 수호신’이라 불렸으며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신성시 하며 모시고 있다.

하지만 추정 수령(樹齡)이 330여년에 이르는 이 당산나무의 현재 모습은 ‘마을의 수호신’이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초라하기 그지없다. 양산시가 나무 주변으로 아파트 건립계획을 승인하면서 당산나무는 기존에 있던 선우3차 아파트와 현재 건설되고 있는 한일유엔아이 아파트 사이에 갇혀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양산시는 당산나무 앞을 흐르는 하천을 매립해 폭 8m의 왕복 4차선 도로를 만들어 아파트 주 출입문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그 때문에 한때 당산나무로써 마을을 호령하던 수호신의 기상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생존마저 위협받는 처지로 전락해 버렸다. 
 

당산나무 위치의 의미
   

그렇다면 당산나무가 있는 이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해답은 의외로 지역의 노거수(老巨樹)인 당산나무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평산마을(당시 아리마을) 당산나무인 느티나무가 묘목이었을 당시 주변에는 같은 수종(樹種)의 나무 여러 그루가 함께 자랐을 것이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다른 나무는 모두 죽었는데, 유독 당산나무만이 아직도 살아남아 채 마을 사람들로부터 마을 수호신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신성시 되고 있다.  

그 이유는 당산나무가 위치한 땅이 다른 곳에 비해 가뭄에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물이 충분하고, 각종 병충해에 대한 내성이 강하도록 양분이 알맞고, 땅 위는 태풍이 휘몰아쳐도 쓰러지지 않을 만큼 쾌적한 곳이며, 햇빛도 나무가 자라기에 알맞은 곳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곳에 붙박이로 살아가는 나무가 30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왔다면 그곳은 나무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필요한 요소를 완벽하게 갖춘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나무가 서 있는 그곳이야 말로 사람들이 풍수지리학에서 말하는 ‘명당’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당산나무가 있는 그 자리에 집을 짓고 사람이 산다면 자손대대로 장수와 복을 누릴 수 있는 장소라는 뜻이기도 하다.

천년의 생명력을 가진 나무

   
지난날 한적한 산길이었을, 지금은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버린 길을 따라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나무를 만나러 갔다. 당산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돼 있기는 하지만 허울뿐인 관리로 접근하는 길마저 찾기 힘들었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에게 수소문해 겨우 찾아간 당산나무는 수호신으로서의 기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파트 공사현장의 기계음과 먼지에 파묻힌 당산나무는 든든하게 마을을 지켜주던 수호신의 늠름한 자태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가지를 뻗고 있던 그 멋들어진 풍취를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이제는 가지 하나 더 뻗을 힘이 없는 듯 모든 것을 체념한 것처럼 보였다. 전쟁에서 모든 부하를 잃고 대패한 장수의 처량함마저 느껴졌다. 

한때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당당히 서있던 당산나무는 이제 거대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아파트 사이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초라한 모습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몸에 난 상처를 치료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자존심에 입은 상처를 치료하는 데는 그 수십 배의 세월을 필요로 하는 법이다. 개발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한 마을의 수호신과 다름없는 당산나무에 저리도 큰 상처를 안겨줘야 한다면 후세에도 결코 환영받지 못할 개발이 될 것이다.

하지만 희망스런 사실 하나는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당산나무를 신성시하며, 경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규모가 크게 줄어들기는 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정월 보름이면 당산나무 앞에서 제(祭)를 올리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나무를 어떻게든 보호할 것이고, 당산나무 또한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다할 것이다.      

산림청은 새천년을 맞아 밀레니엄 나무로 느티나무를 선정했다. 그 이유는 느티나무가 역사성과 문화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새천년동안 강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장수나무이기 때문이라 한다.        

평산마을의 당산나무는 느티나무다. 느티나무는 은행나무와 함께 천년을 손쉽게 훌쩍 넘기는 장수목이다. 평산마을 느티나무는 수령 330여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이제 막 피어나는 청춘이라 할 수 있다.

회색빛 콘크리트 안에서 푸르름을 간직한 청춘의 당산나무를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평산마을의 당산나무로서, 우리 모두의 새천년 나무로서 모두가 아끼고 사랑하는 느티나무가 되었으면 한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