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을 만나면 낯선 경우에라도 형제 나라라고 반가워한다. 형제 관계는 좋은데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이냐고 물으면 그냥 얼렁뚱땅 허허 하고 웃어넘긴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중국 사람을 짱께라고도 하고 심지어는 짱꼴라라고도 부른다. 짱께라는 말은 중국어 장꿰이더(掌櫃的)에서 나왔는데, 금궤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 즉 장사집 주인이란 뜻이다. 우리말의 주인장 정도 되는 말이니까 나쁘지 않다. 하지만 짱꼴라는 심한 욕이다. 이 말은 짱구런(?骨人)에서 왔는데, 짱이란 더럽다는 뜻이고 구런이란 무슨 뼉따구 같은 사람이란 말이다. 더러운 뼉따구 같은 놈이란 아주 모욕적인 표현이다. 세계화된 시대를 사는 문명인답게 이런 말은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 아무튼 이런 표현들에는 오랜 시간 다듬어져 온 우리의 중국 사람에 대한 인식이 담겨져 있다. 사실 한국과 중국은 은(恩)과 원(怨)이 많이 쌓여 온 사이임에 틀림없다.그러면 정말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우리의 중국 바라보기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 막연한 우월감이나 콤플렉스 또는 두려움 같은 선입견을 버리고 그나마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려면 우리가 중국에게 준 것과 중국이 우리에게 준 것이 무엇인지를 꼼꼼히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 정치 경제적 주고받음 그리고 역사 문화적 주고받음을 좀 따져 보자.한국과 중국은 1992년 8월에 수교를 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왕래와 교류가 늘어나 지금은 연 5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왕래를 하고 있고, 우리 유학생만 6만 명이 넘는다. 교역 규모도 1천200억 달러로 중국은 지금 우리의 최대 교역 국가다. 우리가 먹는 농산물의 92%가 중국산이고, 70만 원 대의 노트북 컴퓨터가 가능한 것도 레노보라는 중국 회사 덕분이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쌍용 자동자도 이미 중국 상하이 자동차로 주인이 바뀌었다. 우리 생활 곳곳에 중국은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다.우선 역사 문화적 주고받음에 대해 생각해 보자. 역사 문화적 교류 하면 한류와 고구려사 문제가 먼저 떠오른다. 한류 이른바 한국풍이 중국에 불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한국 대중문화의 소재나 연기 그리고 가창력 다들 좋다. 서구화된 듯하면서도 동양적 정서를 그대로 갖고 있는 퓨전 분위기도 매력적이다. 1980년 대 홍콩 배우들이 우리에게도 스타였듯 한국 연예인들이 중국 청년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한국 기업이 개발한 컴퓨터 게임은 중국 시장을 석권해서 그 게임을 수입한 중국의 젊은 기업가가 10대 재벌에 꼽힐 정도로 부자가 되었다. 문제는 이런 한류가 지속되려면 끊임없이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중국 문화와 할리우드 문화의 틈새에서 얼떨결에 한국풍이 자리를 잡고 있지만 신통치 않다 싶으면 순식간에 스러지는 것이 대중문화 바람이다. 퓨전이든 한국의 전통 문화든 세계인이 공감하는 경쟁력 있는 문화 상품을 계속 생산할 수 있는 내공을 쌓아야만 이 바람을 이어 갈 수 있다. 다음 고구려사 문제로 요약할 수 있는 한중 역사 문제에 대해 간단히 얘기해 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이 문제는 역사와 현실의 경계가 너무나 뚜렷한 문제라 민족 감정으로는 풀 수 없다. 고구려는 우리의 역사이고 우리가 그 정서와 문화를 고스란히 이어 받았지만 현재 그 땅의 3분의 2는 중국 땅이다. 고구려의 고토를 반 이상 깔고 앉아 있는 중국이 유적과 유물을 자국에 유리하게 짜깁기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정이다. 게다가 중국은 땅 욕심이 많은 나라다. 지금 우리 입장에선 이것 갖고 티격태격하기 보다는 중국의 동북공정 보다 더 용의주도하게 고구려와 발해 등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급선무다. 자료와 연구 성과로 말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우리 청소년들이 오이와 부분노 같은 고구려 개국 공신은 모르면서 삼국지연의의 중간급 장수들은 훤히 알고 있는 상황도 정상은 아니다. 역사 교육도 제대로 해야 한다.그리고 좁은 의미의 한중 관계사에서 벗어나 넓은 의미의 동아시아사로 문제를 크게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런 뜻에서 최근 한 중 일 세 나라의 전문가들이 동아시아 담론이란 토론의 틀을 만들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