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찬용>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은 하나의 우주를 만나는 즐거움입니다. 그 시의 창(窓)을 열고 들여다보는 세상의 정원. 그 속에 언젠가 잃어버린 내 생각 하나가 푸른 잎을 흔들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시인이 열어준 「더운 여름」의 창을 들여다보며 눈부시게 내리는 햇빛을 따라가자니 <산과 해변 사이로/ 작은 들녘을 키우고 사는 가난한 마을>의 여름 날 풍경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원근감 있게 다가옵니다. 마치 카메라의 렌즈가 뒤로 물러나듯 <녹두>, <나락>, <감나무>, <매미>, <농사꾼>이 차례로 포착됩니다. 무엇보다도 <비바람에 부딪히고 구름에 절룩이면서도/산과 들에 헛디딤 없이 뿌려지는 ‘햇빛’>으로, <온 산하가 단단한 알맹이로 익어간다>는 표현이 탁월한데요, 이를 통해 시인은 자연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재해석하고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도 여름은 절정의 더위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어쩌면 어디론가 떠나기보다 얼음물에 발을 담그고 한권의 시집을 읽는 것도 더위를 이겨내는 한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그렇게 여름을 꾸려나가면 머잖아 하늘이 높은 가을이 올 것입니다. 조찬용 시인.-----------------1953년 전북 부안 변산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 수원 영복여중 교사. 시집으로,『국어 시간에 북어국을 만난다』, 『숲에 들면 나오지 못하는 새』등 두 권의 시집과 ‘장다리 꽃길에서 부르는 노래’등 7권의 공동 시집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