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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한줄의 노트] 더운 여름..
사회

[시한줄의 노트] 더운 여름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8/21 00:00 수정 2007.08.21 00:00

때로는 햇빛이 너무 좋아 / 먼 옛날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 햇빛을 본다 / 산과 해변 사이로 / 작은 들녘을 키우고 사는 가난한 마을에 / 햇빛이 눈부시게 내린다 / 둘러보면 햇빛이 좋아 / 산 밑 녹두들 제 깍지에 더운 여름 밀어 넣고 / 논빼미 나락들 모가지에 먹이 물고 오르느라 / 어쩔 줄 몰라 키들키들 몸부림친다 / 잎을 달고 낙락거리는 다른 식구들에게도 / 햇빛의 은혜로운 알갱이들이 보인다 / 햇빛들이 비바람에 부딪히고 구름에 절룩이면서도 / 산과 들에 헛디딤 없이 이루어놓은 / 저 빛나는 빛의 농사들 / 누네집 감나무에서는 햇빛만 보면 사족을 못쓰고 / 울어도 날개가 슬픈 매미란 놈 / 말려도 듣지 않고 제 껍질을 벗을 테지만 / 햇빛 더위에 못 이겨 / 농사꾼 둑길에 삽자루 박고 / 잠시 냇가에 풍덩 땀을 적실 테지만 / 누가 뭐라 해도 지금은 / 온 산하가 단단한 알맹이로 익어 가는 / 쨍쨍한 햇빛이 좋다. 
<조찬용>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은 하나의 우주를 만나는 즐거움입니다. 그 시의 창(窓)을 열고 들여다보는 세상의 정원. 그 속에 언젠가 잃어버린 내 생각 하나가 푸른 잎을 흔들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시인이 열어준 「더운 여름」의 창을 들여다보며 눈부시게 내리는 햇빛을 따라가자니 <산과 해변 사이로/ 작은 들녘을 키우고 사는 가난한 마을>의 여름 날 풍경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원근감 있게 다가옵니다. 마치 카메라의 렌즈가 뒤로 물러나듯 <녹두>, <나락>, <감나무>, <매미>, <농사꾼>이 차례로 포착됩니다.

무엇보다도 <비바람에 부딪히고 구름에 절룩이면서도/산과 들에 헛디딤 없이 뿌려지는 ‘햇빛’>으로, <온 산하가 단단한 알맹이로 익어간다>는 표현이 탁월한데요, 이를 통해 시인은 자연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재해석하고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도 여름은 절정의 더위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어쩌면 어디론가 떠나기보다 얼음물에 발을 담그고 한권의 시집을 읽는 것도 더위를 이겨내는 한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그렇게 여름을 꾸려나가면 머잖아 하늘이 높은 가을이 올 것입니다.

조찬용 시인.-----------------

1953년 전북 부안 변산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 수원 영복여중 교사. 시집으로,『국어 시간에 북어국을 만난다』, 『숲에 들면 나오지 못하는 새』등 두 권의 시집과 ‘장다리 꽃길에서 부르는 노래’등 7권의 공동 시집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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