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빚짐이고, 고마움이 그 본질이다. 너 없는 나 없고, 나 없는 너도 없다. 내 몸을 통과해 나간 호흡이 ‘너’의 몸으로 흘러 들어가 생명의 기운이 된다. 생명은 이처럼 인연의 끈으로 촘촘하게 엮여져 있다. 이 사실이 망각된 것이 우리시대의 불행이다.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망각’이란 결국 생명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의 상실이 아니겠는가?깊은 숲 속에 고고히 피어있는 향기로운 들꽃처럼 세상에서 버려진 노인들이나 노숙자들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따순밥을 지어 먹이는 이들을 볼 때, 그 분들이야말로 생명의 존엄을 깨달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생명은 물건이나 상품으로 전락되었다. 자(資)가 본(本)이 된 오늘의 현실은 인간 생명마저 재화를 습득하고자 하는 욕망이 부풀면 가족, 친구, 공동체 따위의 아름답게 어울려 사는 모둠살이의 오랜 내력 또한 송두리째 허물어뜨리고 만다.지난 달 19일 아프가니스탄 봉사활동 중 탈레반 무장단체에 피랍됐다 25일만에 풀려난 김경자, 김지나씨가 17일 오후 델리 발 아시아나항공 OZ768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이들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기독교냐 비기독교냐, 가해자냐 피해자냐?, 봉사활동인가 선교인가? 누구로부터 누구를 위한 세금인가?’ 각종 대중매체와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있는 이러한 질문들을 주제로 한 강도 높은 비판과 비난 일변도의 글들은 보는 이들을 민망하게 한다. 공교롭게도 광복 62주년을 즈음하여 탈레반 무장단체로부터 김경자, 김지나씨가 풀려났다. 이들을 향한 국민들의 다양한 견해와 동시에 ‘기미독립선언서’가 제시하는 생명존중사상을 보자. ‘自己(자기)를 策勵(책려)하기에 急(급)한 吾人(오인)은 他(타)의 怨尤(원우)를 暇(가)치 못하노라. 現在(현재)를 綢繆(주무)하기에 急(급)한 吾人(오인)은 宿昔(숙석)의 懲變(징변)을 假(가)치 못하노라.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所任(소임)은 다만 自己(자기)의 建設(건설)이 有(유)할 뿐이오, 決(결)코 他(타)의 破壞(파괴)에 在(재)치 안이하도다. 嚴肅(엄숙)한 良心(양심)의 命令(명령)으로서 自家(자가)의 新運命(신운명)을 開拓(개척)함이오, 決(결)코 舊怨(구원)과 一時的(일시적) 感情(감정)으로써 他(타)를 嫉逐排斥(질축배척)함이 안이로다.’
(기미독립선언서 중)위의 인용에서 ‘기미독립선언서’의 사상적 배경을 살펴보면,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잘못, 즉 수신의 결여에서 찾고 있으며, 자신을 바로 세움이 또한 타의 파괴에 있지 않음을 명백히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의 생명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의 가르침을 엿볼 수 있다. 이 얼마나 진실하고 아름다운 선언인가 실로 선친께서 민족의 혼을 담아 주신 큰 가르침이라! 각박한 생존경쟁시대를 살면서 어쩜 우린 만연한 물질주의 가운데 생명의 본질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살아 돌아온 생명을 앞에 두고, ‘누구의 세금으로부터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는 근저에는 과연 무엇이 있는가? 이미 우리사회에 팽배한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생명 그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지, 결코 수단이 될 수 없다.
‘기독교냐 비기독교냐, 가해자냐 피해자냐, 누구로부터 누구를 위한 세금인가?’ 라는 질문에 앞서 ‘생명을 위한 것인가? 살리는 것인가? 오늘날 우리 가운데 강도 만난 자의 참된 이웃은 과연 누구인가?’를 물을 수 있는 삶의 자세가 절실하다. 서병세 교수국민생활체육협의회 자문위원
대한체육회 청소년클럽 스포츠 기획위원
부산광역시 생활체육협의회 자문위원
양산시 생활체육협의회 본부임원
양산시민패널단 상임대표
양산 한마을사랑터 대표
양산 외국인 노동자의 집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