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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아이들의 자존심 지키는 법..
사회

아이들의 자존심 지키는 법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9/04 00:00 수정 2007.09.04 00:00

커피 물이 끓는 동안 숨통을 틔어 놓은 부엌 창으로 개구쟁이들의 재잘거림이 가득한 휴일 낮을 끌어당긴다.

아파트 광장에 한 무더기 아이들이 파도처럼 쓸려 다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소리가 들리지는 않지만 노는 모습치고 분위기가 심상찮더니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멀리서 보기에도 몸의 움직임이 커 보이는 두 녀석이 싸움을 하고 있었다.

둘러서서 구경만 하는 녀석들은 싸움터를 확보(?)해주기 위해 밀려갔다 밀려왔다 했다. 싸움을 말려야 할 텐데 아무도 그런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좋은 구경거리를 만난 듯 아이들의 수가 불어났다. 둘 중 누군가 먼저 울음을 터뜨려야 싸움은 끝날 것이다.

주전자에서 물이 끓었다고 성화다. 물을 부을 생각도 않고 창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상황 전개가 궁금한 걸 보니 나도 둘러서 있는 녀석들처럼 구경하고 싶은 건 아닐까? 퍼뜩 정신을 차리며 참을성 없는 주전자를 들고 주르륵 물을 붓는다. 평소 커피 물은 3/5 스타일이지만 물을 더 붓고 말았다.

아이들 무리는 이리저리 위치가 바뀌어 갔다. 물을 붓는 사이 놀이터 쪽으로 옮겨가 있었다. 어느 녀석이 이기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겨자색 티셔츠를 입은 녀석의 몸놀림이 작아진 걸로 봐서 밀리고 있나 보다.

아직 자존심이 팽팽한 녀석들은 주위 시선이 의식되어선지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은근히 걱정이 되었지만 ‘저러면서 크는 거야’, ‘싸우는 것도 공부만큼 중요한 거야’ 혼자 중얼거려본다.
아파트 귀퉁이가 아이들 무리를 가렸다. 구경꾼의 꼬리가 조금 보일 뿐이다. 싸움시간이 제법 긴 걸로 봐서 녀석들은 최소한의 자존심은 건졌을 법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주문을 왼다.

‘얘들아! 울지만 말거라. 더 많이 맞아서 아파 죽겠더라도 안 울면 둘 다 이기는 거야’

아들이 어렸을 적 꼬질꼬질한 얼굴로 들어오면 ‘자존심 지키는 법’이라고 늘 했던 말이다. 싸워서 꼭 이겨야 한다는 게 아니라 나약함을 인정하고 울면 안 된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 싸워봐야 싸울 줄도 안다. 그래야 다음날 다시 친해지는 화해도 배운다.

아이 공부를 가르치겠다고 상담 온 어머니들께 공부는 제때에 해야 한다든가, 성적을 올리겠다던가 하는 말을 해야 하겠지만, 공부보다 중요한 건 건강한 몸과 마음이라고 말하면서 웃기도 한다. 건강해야 싸움도 공부도 할 수 있다.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 쉽게 포기하지 않고, 그저 의존하려 하지 않고 혼자 해내려는 자존심을 지키는 어른으로 자라나길 바란다.

바람이 반대쪽으로 밀려가는 걸 보니 싸움이 끝난 모양이다. 햇살은 시침을 떼고 태연하게 여물고 있다. 녀석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한 판 게임을 하러 ‘우~’ 갔을지도 모른다.

이제야 식은 커피를 훌쩍 마셔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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