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혹은 돈 애기라면 먼저 범려라는 인물이 떠오른다. 범려는 중국 역사상 가장 멋있게 돈을 벌고 또 멋있게 돈을 썼던 사람이다. 그는 돈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하는 탁월한 감각과 능력을 갖고 있어서 어느 낯 선 곳을 가든지 금새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 그리고 번 것을 아낌없이 베풀고는 훌훌 떠나는 미덕도 보였다. 처음과 끝이 다 근사한 멋쟁이였다. 범려는 이미 중국인들에겐 재물의 신이 되어 있다.중국은 기왕에 범려 같은 인물들이 많은 나라다. 돈도 벌 줄 알고 돈도 쓸 줄 알고 돈과 사람도 잘 다룰 줄 아는 그런 인재들이 즐비하다. 그런 재주를 가진 중국인들을 사회주의 정부가 1949년부터 30년 동안 묶어두었었다. 같이 부자가 되자는 균부론을 주장하며 생산성을 담보할 인센티브는 오히려 막아 놓는 그런 세월을 보냈다. 균부의 이상은 결국 균빈으로 끝났다. 다행히 덩샤오핑(鄧小平)이란 걸출한 실용주의적 지도자가 중국을 맡으면서 중국은 경제 현대화를 국정 목표로 삼고 개혁과 개방을 하기 시작했다. 1979년부터 중국은 능력껏 먼저 부자가 될 수 있는 선부론 사회로 바뀐 것이다. 경쟁심과 이기심은 사람의 본능이다. 무언가를 성취하게 만드는 동력이기도 하고. 기왕에도 돈에 관한 한 일가견을 가진 중국인들에게 정부가 판을 깔아주며 먼저 부자 되라고 하니 그 성과가 어떠했겠는가. 중국 경제는 27년 동안 연 평균 9.6% 씩 성장을 해왔다. 수치로 보면 2006년 GDP가 2조 6천억 달러로 세계 4위이고, 무역 규모가 1조 7천억 달러로 세계 3위다. 2006년 3월 이후 외환 보유액은 세계 1위이며, 외국인 직접 투자도 미국과 수위를 다투고 있다. 국가 신용 평가도 우리와 비슷하거나 우리 보다 한 단계 높은 정도다. 2007년에도 상반기 동안 11%가 넘는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선부론의 결과 중국 인구 13억 명 중 1억 명 이상이 중산층이 되었다. 작년 한해 3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해외 여행을 다녀왔다. 중국 경제의 역동적인 성장은 세계 곳곳에서 중국 위협론이란 말이 나올 지경까지 가 있다.문제는 성장의 빛이 밝을수록 그늘 또한 어둡다는 것이다. 우선 연안 지역과 서부 내륙 지역과의 소득 격차가 스무 배나 난다. 한 나라라고 하기엔 격차가 너무 크다. 그리고 못 말리는 것이 상대적 박탈감인데, 지니계수가 0.45가 넘는 대목에서 여전히 사회주의를 얘기하고 있으니 정체성의 위기가 심각하다. 또한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하게 된 결정적인 지원 세력이었던 농민들의 상황이 최악이다.
굳이 보도가 안 되어서 그렇지 땅을 잃은 농민들의 집단 시위가 전국적으로 수십만 건이다. 게다가 관리들의 부패 문제는 정부가 사활을 걸 정도로 심각하다. 중국이 현재 안고 있는 사회 경제 문제는 하나 같이 치명적이다.그래서 중국 정부가 2006년 11차 경제 규획을 시작하면서 내건 목표가 선부론의 폐해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부유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다시 균부론 지향으로 가자는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지금 ‘사회주의 조화사회론’이란 명분으로 선부론의 빛과 그늘을 수습하고 있다. 지난 50여년을 회고하면 중국 경제는 정말 멀미나게 움직였다. 균부에서 선부로 그리고 다시 균부로 변해 왔다. 과연 사회주의 시장경제란 이 요령부득한 모형의 끝이 어디일까. 2007년 현재 중국 경제의 모습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역동성과 불안정성의 혼재라고 정리할 수 있다. 제조업에 관한 한 중국은 블랙홀이다. 세상에 이길 자가 없습니다. ‘중국 물건 안 쓰고 1년 살기’를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했다는 자서전에 모두가 공감한다. 하지만 금융 문제를 위시해서 중국은 세계 경제를 불안하게 만드는 원천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중국 경제를 아주 조심스럽게 전망해 보면, 잠복해 있는 숱한 치명적인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기간 동안 지금 같은 고성장을 지속할 것이다. 왜냐면 중국의 지도부가 검증된 유능한 인재들이기 때문이고 중국 인민들은 아직까지 헝그리 정신이 강하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범려 같은 인재들이 골목마다 숨어 있다. 와호장룡들이 재야에 득실거린다. 무섭다.
그 중국과 이웃해 있는 우리로서는 원려(遠慮)가 없으면 근우(近憂)가 있을 뿐이라는 선현의 말씀이 폐부를 찌르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