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신주꾸 한복판에 위치한 오 존(O-Zone)은 일본의 한 가스회사에서 운영하는 초고층 빌딩인데, 일반 사무실 용도의 건물과 붙여서 특별한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주택 인테리어 디자인과 관련한 여러 분야의 전시 및 상담장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그 규모나 짜임새가 과연 디자인 강국다운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민간회사인 일본가스회사가 기업이윤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운영하는 문화공간으로 볼 수 있는데, 회사측은 그곳을 이용하는 일반인들의 편의를 위해서 본관 앞에서 신주꾸역간의 셔틀버스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버스는 방문객들의 편의 제공을 위해서 건물내 사무실 직원들의 합승을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버스는 두 대가 순환하는데 필자가 탄 시간이 퇴근시간대라 많은 인파가 정류장에 몰려들었지만 방문객 이외는 아무도 버스를 타지 않았다. 감시하는 사람이 없지만 모두가 지킨다고 했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방문객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일본인들을 얘기할 때 많이 나오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우직하리만치 규칙을 잘 지킨다는 것이다. 규칙을 잘 지킨다는 것은 타인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공중의 도덕을 준수한다는 것이다. 특히 도시 생활에 있어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대외적인 도시 브랜드를 높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많다. 거리를 걸어 다니며 담배를 피지 못하게 하고 다중집합시설에서 줄서기를 생활화한다든지, 차량 운행시 교차로에서 정지선을 지키는 등의 작은 일에서도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도시인의 몸에 배인 생활규범으로 자리잡을 때 비로소 도시 이미지가 형상화되는 것이다. 필자는 과거 칼럼을 통해 우리나라의 어린 아이들의 공중도덕에 대한 인식 부족이 성장후에도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는 내용의 글을 발표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하교시간에 주변을 지나다 보면 아이들이 신호를 받고 진행하는 차량의 앞을 가로막고 뛰어가는 바람에 놀란 적이 있을 것이다. 과자 포장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길에 던지는가 하면 음식점 등의 공중장소에서 제멋대로 뛰어 다니는 경우도 예사로 볼 수 있다.문제는 이런 아이들의 행태가 자라서도 그대로 몸에 익어버린다는 데 있다. 타인에 대한 예절이 무시된 이기주의에 젖어서 성장한다면 사회인이 되어서도 공중도덕을 지켜 나갈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점점 무질서하고 무도덕한 방향으로 진행돼 가는 것은 우리에 대한 외부인의 평가를 스스로 절하하는 결과가 되는 동시에 도시, 나아가 국가 이미지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많은 이들이 이런 경향에 대해 우려하면서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사회인으로서 성장해 나가는데 필요한 규칙과 질서를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사회 예절은 많은 기간 학습하여 반사적으로 표현되는 수준이 되어야만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 국가의 힘은 경제, 외교력으로 키워 나간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밑바탕에 국민성과 국민의식수준이 필수적으로 깔려 있어야만 국력도 강화될 수 있다.일본에서는 거지도 예절을 지킨다고 한다. 실제로 필자가 동경도청 건너편 공원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을 봤는데 특이한 광경이 눈에 들어 왔다. 벤치나 화단옆에서 기거하는 노숙자가 누워 있는 자리 옆에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있는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주변을 깨끗이 청소한다는 말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처지와 상관없이 공원을 이용하는 타인의 편의를 걱정하는 그들의 행동이 낯설었기 때문이다.일본이 가진 많은 사회문제에도 불구하고 전후 일본이 선진 강국으로 다시 부상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물론 지나치게 규칙에 집착해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부분도 눈에 띄었다. 동경시내 전망대에 올라 입장을 기다리는데 개시시간이 5분여 남아 인근 음료판매대에 가서 주문을 하니 점원이 준비는 돼 있지만 영업개시 시간이 안 됐다면서 기다리라고 안내한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서로 멀뚱하게 쳐다 보면서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규정의 준수가 주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주문한 쥬스는 금방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