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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 한줄의 노트] 나무길
사회

[시 한줄의 노트] 나무길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9/11 00:00 수정 2007.09.11 00:00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양산지부 회원

나무와 나무 사이에도 길이 있다
바람이 건너다니는 길이다
새가 날개를 접었다 펴면서 건너면
길은 수많은 의문의 잎을 달고 생각에 잠긴다
그 옆으로 열열이 달려가는 전봇대가 보인다
그 길은 묶여서 자유롭지 못하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서로를 붙잡을수록
지독한 가슴앓이를 한다
서로를 묶는 일 나무들은 하지 않는다
놓아둘수록 길은 수많은 갈래를 만든다
어디든지 나무만 있으면 갈 수 있다
늦은 봄까지 초록이 전염되는 것을 보면 안다
가을이 깊을수록 의문을 떨구어
길을 환하게 한다
어렵게 어렵게 살려하지 않는다
가고 오지 못한 길 사람만이 만든다                 
<문정영>  

관찰과 깊이, 사유의식이 자연스럽게 연동된 시입니다. 이 시에서 자연을 대변하는 것이 <나무>라면, 인간이 만들어낸 물질문명의 상징은 <전봇대>입니다.

이 두 소재는 <길>이라는 방향성에서 서로 나름의 서사를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나무의 길은 <바람이 건너다니는 길>이지만, 전봇대는 서로를 묶어 자유롭지 못한 아스팔트길인 것입니다.

<늦은 봄까지 초록이 전염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자연은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길>을 일깨워줍니다.

고속도로가 산을 잘라내고 터널을 뚫는 것은 영영 <가고 오지 못한 길>로 접어들게 하는 단절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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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영 시인
전남 장흥 출생.
건국대학교 졸업.
'97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산맥 동인.
시집,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낯선 금요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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