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이상 향토 사료 발굴과 정리에 몸바쳐 온 송암 정진화 선생에 대한 양산시민대상 수상자 결정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당연한 포상이다.현재 양산향토사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정진화 선생은 27년의 공직생활과 6년의 농지개량조합장 근무기간을 통해 지역의 치안과 행정에 기여해 왔을 뿐 아니라 국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의 사료조사위원과 경남도향토사연구협의회 부회장을 역임하면서 20여 년을 향토사료 연구에 전념해 오고 있다.이번에 양산시민대상 문화부문 수상자로 결정된 근저에는 양산항일독립운동사의 편찬 주도와 숨어있던 독립유공자를 발굴해 서훈을 받게 한 공로와 함께 5년 이상의 시간을 들여 규장각과 기타 관련 도서관과 현장을 답사하며 수집한 양산과 관련한 역사적 자료를 총정리한 양산사료총람의 주도적 집필에 대한 공로를 인정한 결과라 할 것이다.공적심사위원회에서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동의를 얻어 문화부문 대상 수상자로 결정된 정진화 선생이 향토사료 연구에 헌신하게 된 배경은 그의 남다른 공직관에서 비롯되었다.962년 경찰에 투신한 뒤 1983년 1월 당시 기장지서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중 공석이던 물금면(당시) 면장으로 특별임용되는데 이는 우리 지역에서 전무후무한 파격적인 인사로 기록되고 있다. 발령장을 받고 임지로 가는 차 안에서 선생은 취임 포부를 밝히는 몇가지 시책을 구상 중에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물금면의 역사와 전통을 찾아 바로 세우겠다는 취임사를 발표하게 된다.6년의 면장 재임기간 중에 틈틈이 고장의 원로들을 만나 향토의 역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해 오던 그는 퇴임후에도 자료 수집을 멈추지 않는데 슬하의 딸이 한국사에 관한 박사학위를 받고 규장각에 근무하게 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사료 확보에 나설 수가 있었다고 한다.선생은 1993년 농지개량조합장으로 임용된 이후 그동안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물금면민의 전폭적인 후원 아래 읍지편찬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위원장으로서 1998년 물금읍지를 편찬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지역의 사료 연구에 매진하게 되었다고 한다.올해 만 74세인 정진화 옹은 아직도 건강하다.오랜 경찰공무원 생활에서 얻은 신체 단련과 강한 정신력으로 젊은이 못지 않은 체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자신의 표현대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노년이라 못다한 사료 정리에 잠시도 쉬지 못한다고 되내인다.노인회 사무실 2층 한켠에 서너평 되는 향토사연구회 사무실에서 여름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울에는 작은 가스 스토브 하나로 몸을 녹이며, 굵은 돋보기 안경을 쓰고 작은 글씨와 씨름하고 있는 선생의 모습을 보노라면 무엇이 저 노구를 쉬지 않고 일에 몰두하게 하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꼬리를 문다.“양산은 그저 조그만 농촌이 아니었습니다. 신라시대에 황산강(지금의 낙동강 하류)을 경계로 가야와 대적하고 왜구의 침략을 막는 전초기지로서 역할을 다하는 큰 도시였죠. 삽량주는 한때 영남 일대의 12개 군과 34개 현을 관할하는 경주 다음가는 제2의 고을이었지요. 이 점은 우리 후손들이 긍지로 삼을만한 대단한 과거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 그의 표정은 단호하기 그지없다.지금은 동아대학교 총장으로 있는 심봉근 박사가 동아대박물관장 재직시 정진화 선생의 ‘양산사료총람’ 출판기념회 연설에서 “양산의 문화유산과 유물의 가치는 김해의 그것에 전혀 뒤지지 않는 것으로 시민들이 충분히 자긍심을 느낄 만하다”고 설파했다. 심 박사는 1997년 북정 고분군의 부부총 발굴을 주도했었다.정진화 선생의 향토사연구는 고향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자부심에서 출발했기에 한 올의 사심도 없이 정진할 수 있었고 동료 회원들이나 주위의 문화계 인사들도 거부감없이 보조를 맞춰줄 수 있었다고 본다. 특히 최근에는 ‘향토연구’라는 회지까지 창간한 정진화 회장에 거는 기대가 클수록 역사의식을 가진 후진이 많이 양성됐으면 하는 바램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디 그 뒤를 좇는 신진 인사가 선생의 위업을 승계하여 우리 지역의 사료 정립에 매진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정진화 회장의 시민대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