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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조광수의 중국알기] 중국을 읽는 코드 하나
관시(..
사회

[조광수의 중국알기] 중국을 읽는 코드 하나
관시(關係)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10/30 00:00 수정 2007.10.30 00:00
조광수 영산대학교 중국학과 교수

중국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체면을 잃는 일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손가락질을 당하는 일이다. 인격신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또는 내 안의 양심의 소리가 어떨지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더 의식한다.

한편 중국 역사는 분열과 통합이 아주 짧은 주기로 거듭된 멀미나는 세월이었다. 2천년의 역사 동안 우리가 네 왕조를 이어온 사이 중국은 스무 왕조 이상이 부침을 계속해 왔다. 거의 1백년 단위로 새로운 왕조가 생기고 없어지고를 거듭했다면 그 과정에서 백성들 신세가 어떠했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만 하다. 이렇듯 국가가 가장 기본적인 역할인 백성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지 못할 경우 백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기왕에도 사람 관계를 중시하는 중국인들이 국가가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지 못할 경우 선택한 방법은 끼리끼리 뭉치는 것이었다. 단순한 가족이란 범주를 넘어 이른바 넓은 의미의 패밀리들끼리 함께 삶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런 끼리끼리의 결속은 패밀리 안에 드는 사람에게는 간도 빼줄 정도로 극진하다. 간과 쓸개가 서로 도와준다는 뜻으로 간담상조(肝膽相照)라는 표현을 쓰는데, 일단 우리 편이 되면 그것이 불법적인 것이든 탈법적인 것이든 초법적인 것이든 일단 봐 주고 넘어 간다. 공식적인 조직 속의 관계와는 별도로 형성 된 아주 끈적끈적한 중국인 특유의 인간관계다.

하지만 그 범위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배타적이다. 우리 편과 타인 사이에는 엄격한 대우의 차별이 존재한다. 이것을 관시라고 부른다. 이 관시는 부패가 심한 중국 뿐 아니라 투명하기로 세계 상위인 싱가폴이나 홍콩의 중국인 사회에도 존재하고 미국의 화교 사회에도 엄연히 작동하고 있다. 관시는 중국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사회라면 어디에든 존재하는 그래서 중국인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이다. 중국과 중국 사람을 읽는 정말 중요한 코드다. 

 문제는 제도화가 잘 되어 있는 합리적인 사회라면 딱딱한 사람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관시가 틈이 많은 사회에서는 예외와 틈을 더 심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변수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관시는 난세를 살아내기 위한 중국인들의 부득이한 몸부림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런 만큼 체제 전환기일수록 그 위력이 더욱 커지게 된다. 사실 관시는 전환기에 처한 중국 사회를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흔들리는 사회로 만드는 문화적 요인이다. 이른바 선진 사회란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누구라도 안 되는 것은 분명히 안 된다는 공감대가 보편적인 사회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은 아직도 틈이 많고 예외가 많은 이른바 신뢰가 낮은 사회다. 누구나 그 틈을 이용해 크고 작은 편리를 보려한다. 중국인들은 뒷문으로 간다(走後門)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정식으로 안 될 경우 편법으로 해결한다는 뜻이다. 이 뒷문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마지막 열쇠가 바로 관시다. 

 돈이 발언하면 나머지는 모두 침묵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관시가 작동하면 안 되는 일도 되게 한다는 말도 틈이 많은 체제 전환기라면 가능하다. 위에 정책이 있다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下有對策)는 말을 중국 사람들이 자주 하는데 중국인들 특유의 유연성과 융통성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틈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체제 전환 과정은 국가와 시장 그리고 시민사회가 새롭게 견제와 균형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세 세력이 기우뚱하게라도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건전한 사회이고 선진 사회다.
그런데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과도기적인 체제를 견지하고 있는 중국은 지금 국가가 일방적이고 압도적인 힘으로 친시장적 반시민사회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시장과 시민사회가 국가를 견제할 힘이 적을수록 관시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물론 중국 사회도 빠른 경제 성장만큼 달라지고 있다. 만일 관시만 고려하고 중국에 접근한다면 뭘 하든 백전백패한다. 이미 중국의 여러 영역이 세계적 기준에 근접해 있고 스스로 세계의 표준을 만들기도 한다. 관시는 관시일 뿐이다. 아무튼 관시를 모르면 중국에서 쉬이 되는 일이 없지만 그렇다고 관시에만 의존하면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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