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사회학자 호이징하(Johan Huizinga)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놀이하는 사람)라 불렀다. 그는 인간의 삶과 행위 속에서 놀이가 노동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20세기 우리는 노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호모 파베르’(Homo Faber:만드는 사람)로 살아왔다. 그러나 21세기 여가시대를 맞아 ‘호모 파베르’들은 ‘호모 루덴스’가 되기를 열망하고,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어느 광고카피처럼 주어진 여가시간에 일상을 과감히 벗어나야 하지만 그러기가 결코 쉽지 않다. 2002년 한국여가문화학회와 MBC가 공동 조사한 “주5일 근무제 실시 이후 직장인 생활변화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은 ‘여행(36.6%)’, ‘스포츠(29.2%)’, ‘레저(25.6%)’ 등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여가활동을 하고 싶어 한다고 답했다. 그후 2004년 7월 1일부터 주 5일제가 시작되고, 웰빙 열풍으로 여가와 삶의 질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 증대되기 시작했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환경도 조성되어졌다. 그러나 ‘2006년 국민여가조사’에서 사람들이 가장 자주하는 여가활동은 TV시청과 라디오 청취(68.3%)로 나타났다. 예상 외의 이런 결과는 여가시대에 ‘호모 루덴스’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 일상을 떠나지 못하고 소극적이고 정적인 활동으로 여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 5일제가 시작된 지 4년째 접어들고 있다. 여가시간은 주 5일제가 되기 전보다 훨씬 많아졌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여가활동 또한 다양해졌다. 그러나 여가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하며 이틀 휴가를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제대로 놀아 본 적이 없고, 여가교육을 받은 적도 없으며, 노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현실을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결과일지 모른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질은 무척 낮다. ‘지구의 친구들’이 조사한 2006년 행복도 조사에서 178개국 중 102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질이 이렇게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시카고대학의 칙센트 미하이(Csikszent mihalys)교수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놀이에 몰입하라”했지만 과연 놀이에 몰입하는 기술(휴-테크: 休-Tech)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몇 명이나 되겠는가.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놀이에 몰입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여가활동에 몰입해야 만족도가 높아지고 즐거움이 배가된다. 여가활동 중 최상의 몰입으로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모든 여가학자들은 단연 ‘관광활동’을 손꼽는다. 휴일에 집에서 멍청히 TV를 시청하는 것보다 이 좋은 계절에 단풍 찾아 길 떠나는 것이 더 행복하고 즐겁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알 것이다. 가을빛에 짙게 물든 단풍과 사박거리는 낙엽이 어우러진 11월이다.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러 금수강산 어디든지 발걸음을 옮겨 길 떠나보자. 우리 모두 용기 내어 호모 루덴스가 되어 보자. 지금쯤 울긋불긋 단풍잔치 벌어지고 있을 지리산 피아골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도가 있는 연곡사가 있다. ‘부도 중의 부도’라 할 만큼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기품을 간직한 동부도, 서부도, 북부도는 산사의 고즈넉함과 함께 천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연곡사를 찾는 호모 루덴스들을 반갑게 맞아주고 있다. 그 중 북부도 탑신 하단에서 한 석공이 조각한 인간의 머리모양을 하고 몸은 새의 모양을 한 ‘가릉빈가’라는 이름의 인면조를 만나볼 수 있다. 석공의 꿈속에 사람이 되고 싶은 새가 나타나 석공의 마음 속 생각을 돌에 드러내어 아름다운 부도를 만들게 도와주었다. 석공은 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사람의 얼굴을 한 새-인면조-를 부도에 정성껏 조각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자연의 색 놀이가 시작된 이 가을에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에 가보자.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머리만 사람의 모습을 한 인면조가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에 앉아 우리를 반갑게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일상을 떠나는 용기 있는 호모 루덴스만 인면조를 만나 이야기할 수 있다. 삶이 행복하고 즐겁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