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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박성진 칼럼] 농민의 날에 새겨본 메기들 불망비의 사연..
사회

[박성진 칼럼] 농민의 날에 새겨본 메기들 불망비의 사연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11/16 00:00 수정 2007.11.16 00:00

조선말기 고종임금시대인 1864년이면 아직도 중앙의 고위관리들의 지위가 상당하던 때여서 일반 농민들이야 언감생심 면전에서 큰소리하는 것조차 힘들었을 시기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탐관오리들의 폭거에 시달리는 일도 비일비재하여 민초들의 크고 작은 불만이 이어지곤 했다.

이러한 시대에 농민들이 단합하여 직접 중앙관청을 찾아가 잘못된 행정처분에 대해 규탄하고 시정을 요구하여 그 뜻을 관철한 사례가 있다.
바로 우리 지역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금은 신도시 조성사업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땅 ‘메기들’. 남쪽으로는 호포마을 앞에서부터 증산과 석·금산을 지나 읍내 앞들까지 이어진 수백만평의 농지를 기억하는 시민들이 많다.

1920년대 수리조합이 설립되고 양산천 제방이 개수된 이후, 훤하게 경지정리된 들판을 기억하는 농민들에게는 옥답(沃畓) 그 자체였지만 그 이전까지만 해도 낙동강과 양산천이 맞닿은 지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아 홍수로 인한 범람과 침수가 상습화되어 오래 동안 저습지로 버려진 땅이었다. 늪지로 변해 메기와 자라가 서식하는 등 오죽하면 ‘메기들’이란 별명이 붙었겠는가.

이런 불모의 땅에 과도한 농지세가 부과되자 이를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관청에 대해 탄원하기에 이르렀다. 지방관청에서 해결방법을 찾지 못한 농민들이 부과관청인 한양의 호위영으로 몰려가 억울함을 호소하고 면세해 달라는 장계를 전하고 돌아왔다.

다행히 이를 받아들인 호위영 대장 정원용이 관할 군수와 관찰사에게 상세한 조사를 지시해 검토한 연후, ‘메기들에 대하여 영구히 면세하라’는 영을 내리게 된다.

양산향토사연구회가 주민의 제보를 받고 지금의 물금읍 가촌리 일명 청룡등이라는 야산에서 발견해 복원한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는 바로 이러한 공직자들의 은공을 잊지 못해 메기들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공덕비이다.

11월 11일 농민의 날을 맞이하여 그 당시 농민들의 후손인 물금라이온스클럽 회원들이 세사람에 대한 추모제를 거행한 것은 그만큼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올해 초 발굴과 복원을 주도한 향토사연구회 정진화 회장은 영세불망비의 의의를 주민의 고충을 헤아리는 공직자의 위민봉사 자세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농민들의 단결된 힘이 부당한 정책을 변화시킨 위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고금을 막론하고 위정자가 국민을 무시하고 군림하고자 할 때 나라의 형편이 어려웠으며, 올바른 관리의 시정(施政)이야말로 백성들에게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읽을 수 있어 현재의 공직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말로는 위민봉사를 외치면서도 말단 행정에 이르다 보면 시민을 위한 자세보다는 다스린다는 군림의 자세가 남아 있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농민들의 입지는 한껏 작아지고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공산품의 대외 무역 수지를 강조해 외국과의 무역협정을 맺으려고 하다 보니 농산물에 대한 보호장벽이 허물어질 수 밖에 없고 이에 반발하는 농민들에게는 어떠한 국가적 지원도 공염불에 다름아니게 들린다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날, 140년 전 농민들의 집단행동으로 부당한 세금 부과처분이 취소되는 쾌거를 이루었던 역사적 사실과 관련한 당국자에 대한 추모제가 열리는 장소의 인근에서는 한미FTA 인준을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 참석을 위해 상경하려는 농민과 시민단체 회원들을 저지하는 공권력의 대치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잘못된 역사일망정 끊임없이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것을 지키려는 농민들의 피나는 투쟁에 대해 국가경제 전체를 위해 희생을 강요하고자 한다면 보다 근본적인 위무대책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며 나아가 농업의 근본을 경쟁력있게 발전시켜 나가는 데 정부의 지속적이고 과감한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메기들 불망비의 제사가 치러지는 농민의 날 하루만이라도 농민들의 시름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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