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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기획] 지자체 갈등 원인과 대안-③ 갈등 해결 제도적 장..
사회

[기획] 지자체 갈등 원인과 대안-③ 갈등 해결 제도적 장치를 찾아서

엄아현 기자 coffeehof@ysnews.co.kr 입력 2007/11/20 00:00 수정 2008.08.19 05:07
네덜란드 주민, 정책 협력자이자 조언자

<지자체 갈등 원인과 대안>① 지역 갈등 왜 폭등하나?
② 최종합의까지 5년, 시간낭비 아니었다
③ 갈등 해결 제도적 장치를 찾아서
④ 하남시와 시화호가 남긴 교훈

지자체에서 지역주민과 관련한 사업을 추진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 주민설명회이다.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을 설명하고, 주민 개개인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주민설명회가 형식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주민설명회를 보면 주민의 의견수렴은 커녕 ‘이런 사업을 추진하니 알고 있어라’는 공고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한편으로는 주민설명회는 듣지도 않고 일단 ‘결사반대’가 적힌 빨간 띠를 두르고 보는 주민들의 태도도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지자체와 주민 모두 주민참여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네덜란드는 주요 국책사업을 시행할 때 KPD(주민참여제도)를 의무화하고 있다. 다시 말해 법적으로 주민들은 반드시 국책사업에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주민을 정책의 협력자이자 조언자로 정책수행에 도움을 주는 고마운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KPD를 통해 건설되고 있는 ‘네덜란드 남부 고속철(HSL-Zuid)’ 사업의 홍보담당 프레드 씨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해당사자들의 반대의견을 환영한다. 반대의견이 없으면 사업에 그만큼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사례1:  「어두컴컴한 강의실에서 깔끔한 양복차림을 한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설계도면을 가리키며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용어를 사용해 가며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다. 시에서 설명회를 한다기에 열일 제쳐두고 나온 주민들은 연신 고개만 갸우뚱 거리다, 설명회가 끝나고 나눠주는 수건 한 장에 뿌듯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향한다.」

 사례2:  「마을에 혐오시설을 유치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가운데 시에서 주민설명회를 개최한다는 연락이 왔다. 이대로 사업을 추진하게 놔둘 수 없다고 중지를 모은 주민들은 주민설명회 참여를 거부한다. 왜 이 시설을 유치해야하는지, 유치하면 어떤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는지 알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소 극단적일 수 있지만 위 두 가지가 지자체에서 주민설명회를 개최할 때 흔히 있는 대표적 사례들이다. 이것이 주민참여에 대한 한국사회의 현실이자, 지역사회의 단면이다.

양산지역의 경우도 대한주택공사가 동면 사송지구 택지개발사업에 대한 주민설명회를 열었지만 주민들은 “정작 알고 싶은 보상부분이나 이주대책에 대한 설명 없이 계발계획 승인 절차만 구구절절 공지하고 있다”며 설명회 40분 만에 집단 퇴장하는 일이 벌어졌다.

또 송전선로 사업을 취한 한전의 주민설명회가 동면 주민들로부터 외면당했고, 김해 매리공단 조성과 관련해 환경부가 개최하려 했던 주민설명회도 원동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설명회 자체가 무산되기도 했다.

지자체는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사업계획에 반영하고, 주민들 역시 자신의 의견을 타당성 있게 주장하며 사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조언하는 것이 주민설명회의 근본 취지이다. 주민설명회를 통한 주민참여는 마땅히 거쳐야 한다는 인식 부재가 오늘날 지자체 사업의 갈등을 야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 시민참여 법적 의무조항

국토의 25%가 해수면 아래에 있는 네덜란드는 과거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한 둑을 쌓는 것은 어떤 개인 가치와 이익보다 중요히 여겼다. 둑의 위치나 규모에 대해 끊임없이 논의하던 습관이 네덜란드로 하여금 오늘날 공공사업을 진행할 때도 시민들을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제도를 확립시켰다. 그것은 바로 KPD(Key Planning Decision)라고 불리우는 주민참여제도이다.
네덜란드의 KPD는 주요 국책사업을 추진할 때 의무적으로 적용하도록 법제화되어 있는 제도이다.

KPD는 의회에서 사업을 승인하기 전 해야 하는 절차로, 우선 정부가 사업을 발표하면 이후 12주 동안 주민들의 참여가 이뤄진다. 단순한 의견청취가 아닌 다양한 관점, 의견, 자문, 조언들을 통합해 정리한 다음, 사업 계획서를 의회에 제출한다. 의회에서의 심도 있는 논의와 수정을 거친 계획안이 발표되면 또다시 시민들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때는 첫 발표시 자유롭게 의견을 얘기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주민들도 일종의 재판정에 이의제기를 접수한 후 적법한 법적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는 시민들의 무조건적인 반대의견이나 월권행위를 애초에 막기 위한 것으로 주민 스스로도 의견에 대한 책임감을 가질 수 있다.

철도설계부터 주민참여 ‘주춧돌 행정’

네덜란드 남부 고속철(HSL-Zuid) 사업은 이같은 KPD제도를 모범적으로 적용한 사례이다. 이 사업은 네덜란드 암스텔담을 출발해 로테르담을 거쳐 벨기에~프랑스 파리까지 시속 300km 로 운행하는 고속철을 건설하는 것이다.

올해 10월 이 사업이 완공되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어마어마하다. 최초 사업계획(1973년)부터는 34년, KPD를 적용해 재추진해 공포(91년)까지는 16년이 소요된 것. 이처럼 사업기간이 길어진 데는 사업규모나 공사의 어려움보다는 주민참여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수많은 합의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남부 고속철 사업은 1973년 계획됐으나 당시 네덜란드 사회에 확산된 환경주의와 시민운동 영향으로 반대에 부딪혀 중단됐다. 1991년 재추진됐지만 반대여론이 여전하자, 정부는 재추진과정에서 주민참여를 위해 KPD제도를 의무화했다.

정부는 지역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기꺼이 수렴했다. 이 과정에서 남부고속철은 일부는 브릿지, 일부는 지하터널, 일부는 평면 노선 등 어찌보면 약간은 기형적인 선형을 갖게 됐다. 애초 계획보다 공사비도 20% 이상 늘고 공사기간도 16년 가까이 소요됐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주민참여를 통해 건설된 남부 고속철 사업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법제화된 주민참여제도는 오히려 진정으로 자유로운 주민참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로써 네덜란드 정부는 주민이 정책의 협력자이자 조언자라는 인식까지 하게 된 셈이다.


--------------------------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법학전문연구소>

   
▲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법학전문연구소(사진 위)는 갈등조정인 양성제도가 가장 체계화되어 있는 곳이다. 훔볼트 대학교 칼 마이트 슈미트 교수는 취재단에게 갈등조정인 양성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이론과 실기의 접목이라고 설명했다.(사진 아래)
이론과 실기 접목, 체계적 갈등조정인 양성

다양한 갈등상황에서 제도나 경험에 의해 갈등을 조정하는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갈등조정인.

갈등조정인은 갈등원인분석에서 해결방안까지 체계적인 접근에 의해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전문인으로, 궁극적으로는 갈등을 미연에 예방할 수 있도록 갈등연구를 지속하고 더불어 갈등조정 교육자로의 역량까지 갖춰야 한다. 국내에는 사회갈등연구소(소장 박태순)가 유일하며, 실제 갈등조정인이 상당히 부족한 상황이다.

갈등조정인 양성제도가 체계화된 나라는 독일이다.
특히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의 법학전문연구소는 세계에서도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법학부내에 조정인 양성 전문강좌를 두고 있으며, 재정은 민간재단이나 법률사무소에서 출자해 뒷받침하고 있다.

훔볼트 갈등조정인 양성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이론과 실기의 접목이다. 일반 강의시간에도 교수 뿐 아니라 변호사나 각 분야 전문가들을 초빙해 실습을 하는 것처럼 강의한다. 배출된 조정인들은 독일조정인 협회를 통해 관리된다.

독일조정인 협회 가입자격이 있는 조정인이 되기 위해 기본적인 조건을 갖춰야 한다. 먼저 대학졸업자, 전문직 경험 3년, 전문가 훈련 200시간 이수, 4회 이상의 조정관 활동경험 등이 자격조건이다.

자격조건을 갖출 경우 협회에서 발행하는 자격증을 취득하지만 사회적 인지도나 경력이 떨어지는 조정인은 일을 맡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조정인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국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독일 16개 주 가운데 9개 주는 특정한 분쟁에 대해서는 재판 전에 조정인을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명시해 놓았다. 한국 법원에서도 민사분쟁의 경우 조정제도를 활용하고는 있지만, 지역 유지들을 위촉한 국내 조정위원제와 전문적인 자격을 갖춘 독일의 조정관 제도는 질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도 전문성 있는 조정인을 양성하고 활용하는 제도적 장치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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