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는 빙판을 지나온 바람을 받으며,
어느 산골쯤 차가운 달빛 아래에서 밤을
견딜 나무들을 떠올렸다
기억에도 집이 있으리라,
내가 나로부터 가장 멀듯이
혹은 내가 나로부터 가장 가깝듯이
그 윙윙거리는 나무들처럼 그리움이
시작되는 곳에서 나에 대한 나의 사랑도
추위에 떠는 것들이었으리라,
보잘것없이 깜박거리는
움푹 패인 눈으로 잿빛으로 물들인
밤에는 쓸쓸한 거리의 뒷골목에서
운명을 잡아줄 것 같은 불빛에 잠시 젖어
있기도 했을 것이라네,
그러나 그렇게 믿는 것들은
제게도 뜻이 있어 희미하게
다시 사라져 가고 청춘의 우듬지를
흔드는 슬픈 잠 속에서는
서로에게 돌아가지 않는 사랑 때문에
밤새도록 창문도 덜컹거리고 있으리라
<박주택>시에서 단 한 줄의 문장이 마음을 흔들어 놓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 문장으로 말미암아 주위의 이미지들이 탄력을 받고 이끌려 오는 형상이랄까요. <기억에도 집이 있으리라>에서, 깊은 숨이 느껴집니다. 집은 언제나 돌아갈 곳이기에 <쓸쓸한 거리의/ 뒷골목>은 운명처럼 지나야하는 인연들입니다. 이 시인에게 따라 붙는 수식어가 있다면 <지적 통찰력>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기억의 집 창문을 흔들어대는, <서로에게 돌아가지 않는 사랑>은 또 얼마나 이 겨울의 시린 저녁이 될까 싶은 날입니다.김순아 / 시인
한국문인협회양산지부 회원 박주택 시인-----------------------------------1959년 충남 서산에서 출생했으며 경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꿈의 이동건축」「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사막의 별 아래에서」등의 시집을 발표했다.
시론집「낙원 회복의 꿈과 민족 정서의 복원」과 평론집「반성과 성찰」「붉은 시간의 영혼」등을 펴냈으며, 제5회 현대시 작품상(2004)을 수상했다. 현 계간 『시와 시학』편집장, 현재 경희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