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칼 럼] 기본을 지킨다는 것..
사회

[칼 럼] 기본을 지킨다는 것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8/01/22 00:00 수정 2008.01.22 00:00

처음 미국에 유학해서 수업을 들으며 인상 깊은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중의 하나는 교수가 수업 시작 5분 전에 강의실에 와서 학생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에는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질문할 것이 있으면 질문을 받으며 학생들의 대부분이 다 떠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교실을 떠나는 것이었다.

다음 수업을 하러 급히 가야할 필요가 없기도 하겠지만, 늘 ‘내가 여러분들이 필요할 때 도와 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수업 중에도 질문이 있으면 학생은 언제나 질문을 하고 교수는 성실히 대답해 주었다.

처음에는 미국 학생들이 너무 쉽고 당연한 것을 질문을 해서 놀랐는데, 그 질문에 진지하고 자세히 설명하는 교수를 보고는 더 놀랐다. 그런데 그 어리석은 질문들이 16주간의 학기가 진행되면서 말이 되고 수준 높은 질문으로 바뀌며 학생들의 이해도가 깊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휴강이라는 것은 없었고, 수업 시간은 다 지켜졌으며 교과서를 따라서 꼼꼼하게 강의를 하고, 문제를 풀어오라는 숙제를 내고, 숙제는 제때에 채점과 첨삭을 해서 돌려주었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고 수업을 해도 한 학기가 끝나니 학기 초에 나누어 준 계획서 상에 예정했던 대로 책 한권을 다 배웠다. 기회가 되면 휴강을 하고 몇 개월씩 휴교령이 내려지기도 했던 시대에 대학을 다녀, 1년을 배워도 책 한권을 제대로 뗀 경험이 없었던 한국의 유학생에게 이것은 큰 충격이었다.

교과 내용만이 아니라 많은 것을 깨닫고 배웠다.
하기로 한 것을 계획대로 꾸준히 하는 것, 약속 지키기, 가르치는 이나 배우는 이가 각자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하는 것,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성실성이나 지적 능력의 부족에 대한 질책 없이 안전하게 질문할 수 있는 분위기, 어이없는 질문을 받아도 진지하게 답변할 수 있는 여유로움 또는 자신감.

이런 것이 미국을 대국으로 만드는 힘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대단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기본적인 것이다.

그러나 살아 갈수록 기본을 지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희생이 따르기도 하지만, 그것을 지킬 때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가 해결 될 수 있고, 우리가 사는 곳이 더 살기 좋은 곳이 된다는 것을 살아가는 순간 매번 깨닫게 된다.

학교에서 기본이 지켜진다면, 열심히 준비한 교사가 수업시간을 충실하게 보내고, 즉흥적이거나 형식적인 것이 아니고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미리 계획되어진 대로 숙제를 내어주고, 공정하고 빠르게 평가하여 학생에게 돌려줄 수 있다.

또한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을 복습하고 숙제를 하며 교과 내용을 학습할 뿐만 아니라 성실성과 책임 그리고 신뢰에 대해 배우게 될 것이다.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공교육에만 의존하여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하기를 원하는 많은 학생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느끼는 그 다양하고 깊은 회의는 많이 줄어 들 것으로 보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공교육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국민이 뽑은 정치인들이나 공직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뽑은 이들의 유익을 위해 성실히 해야 할 일을 하고, 당장은 자신에게 손해인 것 같아도 바른 길을 가며, ‘누가 옳은가’가 아니고 ‘무엇이 옳은 것인가’ 하는 것이 결정과 선택의 기준이 될 때에 우리는 그들에게 더 많은 신뢰와 존경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기본을 지키는 일’은 어리석게 느껴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물론 지금도 알차게 기본을 지키며 수업을 하는 선생님들이 계신다. 힘들더라도 진리의 말씀만을 붙들고 가는 이들이 있고, 자신의 이익은 뒤로하고 사명감으로 희생을 하는 이들이 있다.

주어진 곳에서 자기가 가진 것으로 묵묵히 기본을 지키는 이런 분들이 있으므로 세상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결국 이런 기본을 지키는 것으로부터 나오며 기본을 지킨다는 것은 대단한 일인 것이다.

 

박미경
영산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