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KBS의 간판 프로그램인 ‘아침마당’ 사회자가 며칠 전 방송 시작 멘트에서 경남 양산시장을 거론했다. 초등학교 졸업 49년만에 중학교 명예 졸업장을 받은 오근섭 시장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학력보다는 능력이 우선되는 수범의 사례로 알린 것이다.오 시장은 지난 19일 양산중학교로부터 지역의 교육발전을 위한 시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1959년 양산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그로서는 감격의 졸업장이 아닐 수 없다.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했던 그에게 부의 축적은 집념이었고 주위의 불우한 이웃에게 함께 나누는 행동 또한 본능적인 동질감이었을 거라고 지인들은 짐작한다. 일찍 바깥세상에 나온 그는 20대에 전국양곡상연합회장을 지낼 정도로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면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로부터 시작해 국회의원 선거, 지방의원, 단체장 선거 등 많은 선거에서 당선과 낙선을 거듭하면서 영욕을 체험해 왔다.40대 불혹의 나이에 자신이 가장 약점으로 여겨 왔던 일천한 학력에 대한 컴플렉스를 딛고 양산대학을 직접 설립해 이사장에 취임했고, 세 번의 도전 끝에 2004년 시장선거에 당선되므로써 전국에 입지전적인 인물로 알려지게 됐다. 시장으로 재임하면서 특히 부산대학교 양산캠퍼스와 한의학대학원 유치 등에 큰 몫을 해내 양산이 메디칼폴리스로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해 나갈 수 있는 비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2006년 부산대학교로부터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많은 시민들은 오 시장이 남다른 경력으로 인해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지방정치인이 된 것을 가슴 뿌듯하게 생각한다. 시장으로서 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공과(功過)와는 별개로 가난하고 못 배운 신분을 딛고 부와 명예를 획득한 그에게 대리만족의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학벌 중심적으로 변모한 것에 대한 내재된 반발심의 반증인 것이다.지난해 우리는 사회적으로 학벌지상주의의 폐해로 인한 큰 소용돌이를 겪었다.
이른바 신정아 신드롬으로 표현되는 학력위조 또는 사칭에 대한 사회적인 추궁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간 것이다. 한 예술계 신진 인사의 파행적인 성장배경에 국가권력기관이 관련되었다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사실이 전국에 보도되면서 몇몇 유명인사들이 덩달아 여론의 단죄를 받기도 했다. 예술계 뿐 아니라 종교계, 학계, 연예계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유명인들이 눈물로 자신의 사정을 털어 놓는 상황이 발생했고 급기야는 조직적인 학력 조작사건들이 세간의 도마위에 오르면서 사법의 심판대에 오르기도 했다.사태의 핵심은 우리 모두가 자신도 모르게 젖어있는 학력지상주의의 영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모든 출세의 뒤안길에 지연, 혈연과 함께 학연(學緣)이 필수적임을 너나할 것 없이 다 경험해 알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 마다 발표되는 새로운 내각의 구성원들을 보라. 학계, 법조계, 관료계, 금융기업계 등 많은 분야에서 상위 계급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의 학력을 살펴보면 쉽게 공통점이 발견될 것이다.지역사회에서도 학력컴플렉스는 존재한다. 초등학교 졸업장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멍에처럼 따라 다니는 핸디캡이 된다. 아무리 학력보다는 능력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막상 어떤 구체적인 평가의 대상에 놓을 때면 출신 학교를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속칭 ‘가방끈’의 길이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러한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계의 큰 별이었던 성철스님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太虛茫茫 廣無邊 (태허망망 광무변)
地球小小 覓難見 (지구소소 멱난견)
聖賢達士 互相誇 (성현달사 호상과)
顯微鏡中 一毫影 (현미경중 일호영)큰 우주속에 지구는 너무도 작으며, 많은 인물들이 저마다 자신이 낫다고 과시하지만 깊이 들여다 보면 털끝만한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스님은 갈파했다.
자신의 부족한 조건을 잘 헤아리고 겸손과 정진으로 인정받는 지위에 오른다면 종이 한 장에 불과한 졸업장도 큰 가치를 발할 것이다. 오 시장의 중학교 명예 졸업장은 그런 의미에서 값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