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중국에는 삼국지 열풍이 대단하다. 이중텐(易中天)이란 내공이 깊은 명물 교수가 공중파를 통해 강의한 내용이 품삼국(品三國)이란 책으로 만들어져 6백만 부 이상이 팔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지 특강 두 권으로 번역되어 나와 있는데 역시 베스트셀러다. 연의 삼국지는 청말의 대학자 장학성(章學誠)이 말했듯, 역사적 사실이 70%이고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허구가 30%다. 이른바 소설이다. 이 소설은 물론 전쟁 이야기다. 일상의 지혜가 아닌 비상 상황에서의 문제 해결 능력과 계략을 담고 있다. 오직 승리만을 위한 갖은 구상들이 망라되어 있다. 상도(常道)가 아닌 권도(權道)가 난무하는 대목이다. 그런 탓인지 난세엔 특히 마니아들이 이 책에 몰두한다. 이를테면 중국 근대의 반유가 사상가인 이종오( 李宗吾)란 사람은 후흑학(厚黑學)이란 아주 독창적인 이치를 말한 바 있는데, 나중에는 후흑교도 창설하고 후흑경도 짓는다. 아무튼 이 후흑학이란 것도 주로 삼국지의 인물들을 연구한 결과 나온 것으로, 얼굴 두꺼운 후(厚)로는 유비만한 인물이 없고, 마음 검은 흑(黑)으로는 조조를 당할 자가 없으며, 손권은 강남이라는 천혜의 조건과 기라성 같은 인재들을 갖고도 유비만큼 두껍지 못하고 조조만큼 검지 못해 당대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얻어먹으면서 눈물로 나라를 얻은 유비나 야심은 가득한데 안면이 받쳐 끝내 당대에 황제가 되지 못한 조조를 기가 막히게 표현한 것이다. 비단 이종오 뿐만이 아니다. 혁명이 두 번씩이나 있었던 난세 중의 난세 20세기의 중국에서 지도자나 지식인 내지는 교양인 중에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나저나 한국에선 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까지도 이 난세의 책에 몰두하는 것일까. 한국이 난세여서일까 아니면 한국의 교육이 난리이기 때문일까.그런데 삼국지의 가장 큰 문제는 너무 재미있다는 것이다. 우선 구조가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중국의 정치사는 아주 짧은 주기로 분열과 통합이 거듭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삼국지는 그 분열과 통합 과정의 한 전형이다. 특히 양자 구도 보다 삼자 구도 사이의 밀고 당김이라는 점이 더욱 흥미롭다. 물론 위·촉·오 세 나라는 규모나 인력에서 동급은 아니었다. 여러 통계는 위·오·촉의 규모가 4 : 2 : 1 정도라고 알려준다.그럼에도 삼국 정립이란 구도가 만들어진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기우뚱한 균형을 아슬아슬한 심정으로 읽어가는 것만으로도 놀라움이고 즐거움이다. 다음, 등장인물들이 흥미롭다. 삼국지에는 영웅도 있고 미인도 있고 뛰어난 장수도 있다. 간신과 기회주의자 그리고 배신자들도 있다. 비상 상황에서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인물들이 모두 나온다.중국은 사마천의 사기에서부터 루쉰(魯迅)의 단편소설들에 이르기까지 사람에 대한 궁구가 대단하지만, 삼국지도 인물 묘사에 있어서만큼은 단연 압권이다. 관우나 공명 등 한 사람 한 사람을 떼어 분석해도 각자 주인공으로 충분할 인물들이 수두룩하다. 끝으로 적벽대전이나 관도대전을 비롯해 크고 작은 싸움 그리고 3백 명이 넘는 중요 인물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관계 등 수 많은 에피소드들이 흥미진진하다. 그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경극이나 영화의 소재가 되어 흥미를 더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중국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타통관(打通關)이란 놀이를 하는데, 조조에 투항해 있던 관운장이 유비를 만나기 위해 다섯 관문의 장수를 목 베고 지나가는 장면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가 폭탄주 마시듯 술좌석의 흥을 돋아주는 오랜 습관으로 민간의 사랑을 받고 있다.사실 삼국지가 유행한다는 것은 세상이 팍팍하다는 뜻이다. 강호의 분위기가 냉혹하고 살벌할수록 난세 이야기는 인기다. 상식보다 권모술수가 유행하는 사회, 예의염치보다 큰 소리와 주먹이 앞서는 사회 그리고 의로움보다 이해관계가 더 발언하는 천박한 사회와 시대일수록 삼국지는 바로 나의 얘기가 되는 것이다. 지금의 중국은 역동적인만큼 변화무쌍하다. 성공한 소수와 실패한 다수가 엉켜있다. 시장은 엄혹하고 나라의 손길은 멀다. 저마다 장기를 앞세워 위로 위로 올라가기에만 바쁘다. 조조의 임기응변이 절실하고, 관우의 무모한 자신감이 그리우며, 제갈공명의 냉정함이 필요한 대목인 것이다. 그나저나 우리 한국도 그런 상황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