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조광수의 중국알기]성장하는 중국의 딜레마
..
오피니언

[조광수의 중국알기]성장하는 중국의 딜레마
농민공 문제

양산시민신문 기자 232호 입력 2008/05/20 11:19 수정 2008.05.20 10:42

영산대학교 중국학과 교수

중국 역사에서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인 유민(流民)이 없었던 적은 없다. 짧은 주기로 통일과 분열이 반복되는 대목에서 삶을 찾아 부초처럼 움직이는 것은 중국인의 오랜 생존 방식 중의 하나였다. 이를테면 커쟈(客家) 사람이라 불리는 집단이 그렇고, 삼국지의 신비한 인물 제갈공명도 고향 산동(山東)을 떠나 당시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던 쓰촨(四川)으로 옮겨왔던 사람이다. 근대에 와서 대규모 해외이주로 동남아를 비롯한 세계 전역에 화교가 생긴 것도 이런 유민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던 중국이 1950년대 말 자력갱생을 부르짖으며 밖으로는 죽의 장막을 치고 안으로는 농촌과 도시 사이의 왕래를 통제하는 호구(戶口) 정책을 쓴 바 있다. 대약진운동이란 급진적 대중 동원이 허망하게 실패하면서 자연재해까지 겹쳐 극심한 식량부족 사태가 생기자 농촌과 도시의 호적을 구분하는 이원적 정책을 펴게 된 것이다.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을 규제하던 이 호구 정책은 최근 몇 년 전부터 저장(浙江)성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사실상 폐지되고 있긴하지만 아직도 엄존하고 있는 제도다.

지금 중국 인구 13억명 중 5억명이 도시 호구이고 8억명이 농촌 호구이다. 이들 농촌 호구를 가진 사람들은 구조적으로 농민에 비해 농토가 적은 농촌에서 달리 선택의 여지없이 살아왔었으나, 1978년 개혁 개방 이후 동부의 도시 지역이 급성장하면서 공사 현장이나 서비스 현장에 인력이 필요하게 되자 그 자리를 ‘무작정 상경’하여 채워 오고 있다.

이들을 농민 출신 노동자라는 의미로 농민공 또는 민공이라 부르는데, 민공이 국가가 비용을 들여 동원한 사람들이란 좀 더 제도적인 뜻으로 쓰이는 반면 농민공은 문자 그대로 정부의 보호 없이 자발적으로 생긴 농민출신 노동자란 뜻이다.

농민공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1992년 도시의 식량배급표 제도가 없어진 이후다. 농민들도 도시에 와서 번 돈으로 식품 등을 구입할 수 있게 되면서 당시 4천만 명 정도 되던 농민공의 숫자가 늘어 2008년 현재 1억2천만 명에서 2억명 정도 된다. 2억명이란 숫자는 향진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들까지 포함한 수치인데, 향진기업이란 농촌지역에 세워진 공장을 말한다.

농민공의 문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이들의 임금이 도시 노동자들과는 현격한 차이가 난다는 것과 산업재해나 실업 등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둘째,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삼농(三農, 농촌 · 농민 · 농업) 문제와 관련 있다는 점이다. 셋째, 그 규모가 크고 진행 기간이 길다는 점이다. 먼저 차별대우 문제부터 살펴보자. 농민공은 중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의 원천이면서도 같은 노동을 하는 도시 근로자들보다 반 내지는 3분의 1밖에 안 되는 임금을 받고 있다. 중국산 중저가 제품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이면에는 이들의 희생이 깔려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도시 호구를 가진 근로자들이 실업 수당을 포함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고 있는데 반해 이들은 불안한 고용에다 재해 구제에서도 공백 상태다. 불구가 되면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거나 낙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음으로 농민공 문제의 기저에는 심각한 삼농 문제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건 어쩌면 중국 정부의 존망이 걸린 사태라고 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은 노동자와 농민의 지지로 성립된 정권이다. 지난 30년 동안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이제는 그 수혜자인 부유한 자본가와 중산층까지도 지지 기반으로 하게 되었지만 공산당이 집권하는 한 농민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도시와 농촌 사이의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고, 농촌의 잉여인력들은 기회를 찾아 계속 도시로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중국은 지대물박한 나라다. 하지만 경작지가 적어 세계 평균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 구조적으로 8억 농촌 인구 중 농민으로 살 수 없는 사람이 반이나 된다. 2억명이 이미 나와 있지만 여기에 그 숫자만큼 되는 인력이 농민공으로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른 선택의 기회가 없었을 때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농촌에서 끝을 봐야했지만 이제 도시로 나가면 인생역전의 기회가 있으니 보따리를 들고 몰려나오는 것이다.

끝으로 농민공의 규모가 크고 긴 시간 동안 지속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농민이 도시로 이동하는 현상은 자연스럽다. 한국을 포함 개발도상국가들이 모두 겪었던 일이다. 하지만 대체로 그 규모가 제한적이고 진행도 중단기간에 끝났다. 중국 상황은 유동인구가 워낙 많고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것이다.

중국은 역동성과 불안정성이 혼재된 과도기 상황이다. 적어도 우리 당대에는 이런 변화무쌍한 중국을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역동적인 모습과 불안정한 모습의 한 가운데 농민공이란 존재가 있다. 중국을 더 키워줄 수도 또 흔들어댈 수도 있는 존재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