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우리가 ‘경제’를 외치는 동안 숱하게 외면당해온 소중한 가치들이 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우리가 곱씹어 봐야할 가치를 생각하는 것이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또 다른 여유가 아닐까.
본지는 기축(己丑)년 새해를 맞아 자칫 잃어버리기 쉬운 가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양산 지역 주요 종교지도자를 찾아 이 시대 ‘경제’가 아닌 새로운 시대정신에 대해 들어보기로 했다.
![]() |
ⓒ 양산시민신문 |
지역 불교계의 큰 어른인 통도사 정우 주지 스님은 최근 경제 침체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각박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먼저 우려감을 나타냈다.
정우 스님은 얼마 전 방송에서 본 한 호떡장수 부부의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정우 스님은 호떡을 팔아 번 돈을 십수년간 틈틈이 모아 거액의 기부를 한 그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잊고 있던 ‘마음’을 발견했다는 것.
“‘위를 보지 않고 아래를 보고 산다’는 호떡장수의 말을 들으며 우리가 ‘어렵다, 어렵다’는 말을 반복하는 상황이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정우 스님은 ‘나보다 못한 이들이 더욱 많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지금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위안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며 반문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운 시절을 겪어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어려움이 과거 식민지 시대나 6. 25 전쟁처럼 배고픔에 직면한 어려움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정우 스님은 현재가 과거보다 물질적으로 더욱 풍요로운 시대이지만 사람들의 욕심이 더욱 커진 시대라고 말한다. 정우 스님은 이러한 현대인의 욕심에 대해 ‘목마름’이라고 표현했다.
![]() | ![]() | |
ⓒ 양산시민신문 |
IMF보다 더 어렵다는 요즘. 정우 스님은 이 말에 수긍하면서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IMF 직후 우리 사회는 ‘금 모으기 운동’으로 대표되는 나눔의 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자신만을 돌아볼 뿐 전체를 돌아보는 여유가 더 부족해졌기 때문에 더 큰 어려움으로 다가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금을 찍어 먹은 사람처럼 욕심과 욕망이 가득해진 사회는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한 몸 한 가족’이라는 가치를 바라보는 것이다”
정우 스님은 ‘목마름의 시대’에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바로 눈 앞의 이익에 집착해서는 안된다고 전한다. 영화 ‘투모로우’에서 지구 온난화로 인해 재난이 발생하는 것을 보고 우리 각자가 세상에 펼쳐놓은 욕심이 결국 지구를 멸망하게 이르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말로 ‘인과(因果)’의 소중함을 새삼 강조하기도 했다.
정우 스님이 설명하는 인과의 소중함이란 ‘나 하나만’이라는 생각이 중첩되고, 중폭돼 결국 전체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세계는 결국 하나인데 자신만의 좁은 울타리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악순환을 가져온다는 말이다.
‘도와 달라’가 아닌 ‘함께 하자’
정우 스님은 ‘나 하나만’이 아닌 ‘나로부터’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함께’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고 전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어려움을 이겨내는 최선의 길은 바로 함께 하는 일입니다”
쉽게 우리는 ‘도와 달라’, ‘도와 준다’는 말은 사용하지만 정작 누가 누구를 도울 수 있겠느냐는 정우 스님의 질문에 우리는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새로운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정우 스님이 강조하는 ‘어울림’의 철학은 바로 함께 살아가는 일에 서로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진리이다.
정우 스님은 통도사 주지로 사명을 시작하면서 처음 통도사 경내 주변에 쳐진 울타리를 걷어 내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한 조치였다. 이러한 정우 스님의 생각은 오늘날 남의 어려움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바라보는 현대인들에게 ‘어울림’의 철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더욱 절실하게 만들고 있다.
통도사라는 큰 사찰을 운영하는 경영인으로서 정우 스님은 통도사에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단순히 한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정을 책임지는 것이라며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정우 스님은 반대로 일하는 사람 역시 내 가정을 책임지는 곳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함께할 때 보다 건강한 사회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에서도 노사간의 화합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 하지만 사용하는 사람도 사용을 당하는 사람도 모두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동참할 때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혜가 생기기 마련이다”
인색한 사람이 되지 말자
“인색한 사람은 복이 없는 사람이다”
정우 스님은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근검절약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근검절약의 태도가 인색함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정우 스님은 인색한 사람이 복이 없는 사람이라며 “볼 것을 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라는 불교 경전의 문구를 인용했다.
이 말을 현대적으로 풀이하면 “쓸 것을 쓰는 것은 쓰는 것이 아니다”로 해석할 수 있는데 정우 스님은 무조건 허리끈을 졸라 매고 각박하게 살아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며 우리가 서로를 위해 쓸 수 있는 것은 과감히 쓸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자신의 사례를 들면서 예전에는 다른 이가 자신과 다른 이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면 그 색안경을 지적하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자신과 다른 이를 바라 보는 이들의 마음을 보고,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기 위해 애쓴다는 것이다.
외부의 변화에 눈을 돌리기 보다 자신의 허물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가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 정우 스님의 설명이다.
대담_ 박성진 편집국장
정리_ 이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