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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특집] 3월, 꽃보다 아름다운 임들의 넋이여!..
기획/특집

[특집] 3월, 꽃보다 아름다운 임들의 넋이여!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9/03/03 15:01 수정 2009.03.03 04:05

민족의 기개를 떨친 3.1 만세운동이 올해로 90주년을 맞이했다. 최근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90년 전 한반도 곳곳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선조들의 정신은 색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나라를 빼앗긴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희망을 이야기했던 정신은 어려움 앞에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일어서야 한다는 굳건함을 말하고 있다.


ⓒ 양산시민신문
■양산 3.1 운동
젊음이의 심장을 불태우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은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양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3. 1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고 있을 무렵 중부동에 살고 있던 엄주태(당시 20세)는 3월 12일 만세운동의 분위기도 알아볼 겸 혼자서 부산으로 갔다. 그는 부산 일원을 돌아본 후 동래읍에 있는 친척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인 13일에마침 동래고보 학생들이 대대적인 만세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엄주태는 그 대열 속 주동인물의 한 사람인 엄진영(친척)의 열렬한 거사를 목격한 뒤 의분에 넘쳐 군중과 함께 시위에 가담했고, 학생들이 뿌린 ‘독립선언서’와 공약서·경고문 등을 주워 품 속 깊이 감춘 채 집으로 돌아왔다.


■3월 27일, 독립을 부르짖다

14일, 양산공립보통학교 교정에서 동지 전병건을 만나 어제 동래의 만세 분위기를 들려주고 품 속에 간직했던 독립선언서도 보여준 엄 씨는 곧장 양산의 의거를 의논, 그 자리에서 거사 결행에 동참하겠다는 전병건의 동의를 얻어냈다.

두 사람은 동지들의 호응에 힘입어 구체적 거사일을 3월 27일(음 2월26일 양산장날) 정오,장터로 결정하고 진행방법 등을 논의하였다.

25일에는 준비사항을 점검하고 미진한 부분을 서둘러 보완하였다. 엄주태, 전병건, 박삼도, 정주봉, 이귀수 등은 거사 당일 배포할 독립선언서를 대량 등사하기 위하여 오후 5시 무렵 양산군청 사환인 정주봉으로 하여금 양산군청의 등사판을 엄주태의 집으로 몰래 가져오게 한 후 독립선언서 200매와 공약서·경고문 등을 등사 제작하고 ‘대한독립만세’라는 큰 깃발도 만드는 등 시위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갖추었다.

예정된 3월 27일, 주모자 5명은 준비물을 은밀히 휴대하고 장터로 잠입하였다. 이날따라 각처에서 많은 장꾼이 모여 들었다. 사전에 연락되어 있던 강재호, 안덕원, 전병한 등도 장꾼과 함께 모였다. 예정된 12시에서 1시간을 기다리자 동래, 기장, 언양 등지에서 장꾼 등 3천여명이 모여들어 장터를 가득 메웠다.

이때를 놓칠세라 주동자 5명은 장터 한복판으로 들어섰다. 준비한 독립선언서 등을 군중들에게 배포하면서 ‘대한독립만세’란 깃발을 높이 쳐드는 순간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그 때 군중 속에 끼어 있던 강재호, 안덕원, 전병한 등도 연달아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자 장터의 장꾼 3천여 명도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삽시간에 장터는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로 변하고 만세소리는 천지를 진동하였다. 주동자들은 여세를 몰아 군청을 향해 시가행진에 들어갔다.

이에 화들짝 놀란 양산헌병분견소의 헌병과 순사들은 총검으로 시위 군중을 저지하고 차단하였으나 용감한 청년시위대는 질서정연하게 만세시위를 계속하였다. 군중은 양산헌병분견소와 양산군청으로 진격하여 정문에서 대치하면서 구인한 청년들을 석방하라고 외쳤다. 성난 군중들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옷을 벗어들고 “우리 전부를 구속하라”고 외쳤다. 이때 주변 마을의 주민들도 농악을 울리면서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다급해진 일본헌병들은 부산으로 지원요청을 하는 등 실탄을 발사하기도 했다.
이렇게 시작된 양산의 3.1 운동은 4월 1일 오후 2시 약 2천 명의 군중들이 다시 떨쳐 일어나 2차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하북 신평 하늘에 퍼진 만세소리

하북 신평장터에서 펼쳐진 신평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3일 만해 한용운 선생의 밀지를 받은 오택언에 의해 주도됐다.

통도사지방학림 출신으로 서울불교중앙학림에 유학 중이던 오택언은 3월 5일 통도사에 도착한 뒤 통도사지방학림 학생대표 김상문과 통도사 강원 스님 등과 함께 서울 의거를 설명하고, 신평장이 서는 3월 13일 거사를 실시키로 했다.

그러나 3월 7일 밀고로 인해 오택언이 피검되어 서울로 압송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거사는 하북면 줄다리기 대회를 핑계삼아 모인 군중들과 함께 진행되었다. 당일 통도사 부속 보통학림과 지방학림 학생 수십명과 불교전수부 학생 및 승려 20여명이 신평장터에서 줄다리기를 하기 위해 모인 군중들과 합세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연설을 진행하며 전단을 배포하면서 신평 만세운동이 펼쳐졌다.

이후 주모자로 지목된 김진옥이 체포되고, 김상문은 피신한 후 상해임정 특파원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하북면사무소에 근무한 박세문은 거사를 암암리에 돕고, 주동자를 피신시키도 했다. 박세문은 이후 면서기직을 사임하고 일본으로 피신하였으나 일경에 검거돼 혹독한 고문을 받아 사망했다. 또한 신평 만세운동을 처음 주도한 오택언은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월의 선고를 받아 옥고를 치뤘다.

양산항일독립운동사 / 자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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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울리는 “대한독립만세”

라이온스클럽 주최, 만세운동 재연행사
7일 오전 10시, 종합운동장 일대서 열려

1919년 3월 1일 온 국민이 하나 돼 외쳤던 그날의 함성이 양산 하늘 아래 다시 울려 퍼진다. 제90주년 삼일절을 맞아 양산지역 라이온스클럽이 연합해 제4회 3.1만세운동 재연행사를 펼친다.

국제라이온스협회 355-I(울산, 양산)지구 주최로 오는 7일 오전 10시부터 열리는 재현행사는 종합운동장 분수대와 양산지역의 만세운동이 벌어졌던 옛 양산시장터를 중심으로 열릴 예정이다.

통도사의 예불의식과 이지은 무용단의 진혼춤 등 순국선열에 대한 위령제에 이어 해병대 의장대의 식전공연, 대북 퍼포먼스, 라이온스합창단 공연 등 화려한 볼거리가 펼쳐지며, 3.1절 사진전 등 다채로운 부대행사도 마련된다.

특히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몸을 내던지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당시 만세운동을 재현한 시가행진은 이날의 하이라이트가 될 전망이다. 당시 시민과 의병, 일제 순자 복장을 입은 참여자들은 3.1 운동 상황을 그대로 재연해 해마다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올해는 한층 화려해진 볼거리로 숭고한 독립운동정신을 되살릴 계획이다.

국제라이온스협회 355-I지구 노상도 기획부총재는 “이번 재연행사는 단순히 그날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날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하는 것”이라면서 “광복은 이미 이뤄진 소망이지만 그때의 마음으로 하나로 뭉쳐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홍성현 기자 / redca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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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시민신문
Interview >> 향토사연구회 정진화 회장

“제2의 독립운동 하는 심정이었다”

양산항일독립운동사 편찬에 주도적
오는 27일 개정ㆍ증보판 발간 앞둬

3.1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올해로 90돌을 맞았다. 하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만세운동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조금씩 희석돼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1919년 3월 27일과 4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벌어졌던 양산지역의 만세운동에 대해 아는 시민은 그리 많지 않다.

이에 양산항일독립운동사 편찬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오는 27일 개정·증보판 발간을 앞두고 있는 양산향토사연구회 정진화 회장을 만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항일운동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들어봤다.

양산항일독립운동사 발간은 양산항일독립운동기념탑 건립사업과 맥락을 같이 한다. 정 회장은 “기념탑을 세우고자 의견이 모였을 때 양산지역 항일운동에 대한 총괄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학문적인 토대가 마련돼야 단순 기념탑이 아니라 혼을 가진 상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책 발간을 위해 자연인의 모임 회원들이 주축이 돼 편찬위원회가 구성되고, 자료 수집과 집필에 꼬박 2년이 걸렸다. 이렇게 2004년 11월 양산지역의 항일운동을 집대성한 양산항일독립운동사가 빛을 보게 됐다. 이 과정에 대해 정 회장은 “제2의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양산항일독립운동사는 5년여만에 개정·증보판 발간을 앞두고 있다. 기념탑 준공식과 함께 발간할 예정인 개정·증보판에는 기념탑 건립과정과 추가로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의 공적 등이 추가된다.

정 회장은 “나라와 양산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조상들의 업적을 되살려 양산의 정통성을 살리는 것은 후대의 사명”이라며 “독립운동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정신을 밝혀내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지역민들과 교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홍성현 기자 / redca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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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시민신문
춘추공원 해태상, 일제시대 산물?

춘추공원 입구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해태상 두 마리. 기세등등한 용맹을 자랑하는 해태상은 춘추공원에 모셔져 있는 삼조의열단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보이나 실상은 일제 시대의 잔해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양산향토사연구회(회장 정진화)에 따르면 현재 춘추공원에 있는 해태상은 1945년 용두산 공원 일본 신사에 세워져있던 조형물로 용두산 공원 재정비가 들어가면서 버려져있던 것을 당시 춘추계원인 김영달의 동생 김영찬이 싣고 온 것이다.

정진화 회장은 “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양산을 대표하는 선조를 모신 춘추공원에 일제 시대의 잔재가 있는 것은 어울리지 않으므로 재정비 때 철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조원정 기자 / vega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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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독립운동 관련 사업 진행상황 |


항일독립운동기념탑 준공 27일

양산에서 펼쳐진 3.1만세운동을 비롯해 각종 독립단체 항일운동에 참여한 선조들을 기리는 항일독립운동기념탑이 이달 27일 준공된다.

양산 항일운동정신을 높이 사고 후대에 널리 알리기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진행한 사업은 기념탑 아래 광장공사가 지연되면서 애초 예정됐던 이달 1일에서 양산 3.1운동이 일어난 27일로 준공식이 연기됐다.

기념탑은 150㎡ 바닥에 화강석 재질의 탑(높이 16.3m)과 헌시와 위패벽, 항일운동 활동상을 그린 부조, 헌화·분향대 등으로 구성됐다. 특히 탑은 양산에서 펼쳐진 항일의병활동, 3.1만세운동, 농민조합 항일투쟁, 항일청년운동 등 4대 항일운동을 상징해 4개의 탑신으로 이뤄지며, 전체적인 조형은 호국선열의 민족정기 승화로 웅비하는 양산의 기상을 표현하고 있다.

시와 울산보훈지청, 토지공사의 지원을 받아 건립이 추진된 기념탑은 모두 5억5천만원의 예산이 소요됐다.


삼조의열단 정비 순조로워

신라, 고려, 조선조의 양산을 대표하는 인물 각 한 분씩을 모시고 있는 춘추공원 내 삼조의열단이 후대에 해당하는 충혼탑보다 아래쪽에 위치해 상하 위치가 바뀌었다는 지적이 제기돼 시가 삼조의열단 재정비에 들어갔다.

시는 춘추공원 재정비 사업 계획안에 삼조의열단 위치 조정과 함께 삼조의열·임란공신·항일열사 등 모든 선열들의 위패를 한자리에 모실 수 있는 사당인 충렬사를 짓는 계획을 검토 중이다.


윤현진 선생 선양사업 지지부진

양산지역 출신 항일 독립 운동가이자 상해임시정부 설립의 주역인 우산 윤현진 선생의 선양사업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난해 말 양산문화원(원장 김영돈)이 500만원의 예산으로 선생의 업적을 기린 달력을 제작한 것 외에는 별다른 추가 사업이 계획되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끊임없이 제기된 선생의 생가터 복원 사업 역시 시가 별다른 입장표명을 하지 않아 허공에 뜬 상태다.

윤현진 선생의 하북 문중(회장 윤중부)과 박인주 의원(무소속, 상·하북·동면)이 일반공업단지 내에 포함된 선생의 생가터를 복원하고 기념비를 세워 선생의 업적을 기려야 한다고 재차 주장했지만, 시는 계획을 검토해보겠다는 말만 되풀이해 아쉬움을 낳고 있다.

조원정 기자 / vega576@


양산지역 독립유공자 포상현황 >> 양산항일독립운동사 / 자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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