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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한줄의 노트] 민들레
사회

[시한줄의 노트] 민들레

양산시민신문 기자 271호 입력 2009/03/10 11:50 수정 2009.03.10 11:50

너에게 꼭 한마디만, 알아듣지 못할 것 뻔히 알면서도, 눈에 어려 노란 꽃, 외로워서 노란, 너에게 꼭 한마디만, 북한산도 북악산도 인왕산도 아닌, 골목길 처마 밑에 저 혼자 피어 있는 꽃, 다음날 그 다음날 찾아가 보면, 어느새 제 몸 다 태워 가벼운 흰 재로 날아다니는, 너에게 꼭 한마디만, 나도 그렇게 일생에 꼭 한번 재 같은 사랑을, 문법도 부호도 필요없는, 세상이 잊은 듯한 사랑을, 태우다 태우다 하얀 재 되어 오래된 첨탑이나 고요한 새 잔등에 내려앉고 싶어, 온몸 슬픔으로 가득 차 지상에 머물기 힘들 때, 그렇게 천의 밤과 천의 낮 말없이 깨우며 피어나 말없이 지는, 예쁜 노란 별, 어느날 문득 내가 잃어버린 그리움의 꿀맛 같은, 너에게 꼭 한마디만

민들레는 수백 개의 갓털이 달린 낱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시를 읽다보면 쉼표와 쉼표 사이 이러한 갓털의 이미지가 마음에 흩날립니다. 그 한 표현이 어디로 날아가 앉을 지에 따라 제각각 소통이라는 꽃도 피겠지요. 이 시의 포인트는 민들레 씨앗을 <재>로 본 직관에 있다고 할 것인데, 활활 타올랐던 사랑이 결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깨우며 피어나 말없이 지는> 존재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았던 작은 민들레는 누구의 사랑이었던 것일까요, <너에게 꼭 한마디만>이 자꾸만 이명(耳鳴)으로 남는군요.


김상미 시인

1957년 부산에서 태생. 1990년 『작가세계』 여름호로 데뷔. 시집으로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검은, 소나기떼』,『잡히지 않는 나비』, 산문집으로 『아버지, 당신도 어머니가 그립습니까』이 있다. 2003년 『오렌지『 외 4편으로 <박인환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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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아 / 시인
한국문인협회양산지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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